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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키 Oct 17. 2023

고시원 탈출을 도와주신, 화성시 병점동 부동산 사장님

“열심히 살다 보면 다 갖게 돼요.”


27살에 대학을 졸업했다. 휴학을 최대로 끌어다 쓴 뒤 4학년으로 복학했더니 동기뿐만 아니라 후배들까지 졸업을 한 뒤였다. 취업 준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다른 취준생에 비해 높은 나이와 어정쩡한 학점을 기재한 이력서는 서류통과의 문턱을 넘기에도 부족했다. 이력서를 일주일에 세 통씩 제출하면서 몇 달을 졸업 전에 취업하리라 마음먹고 애를 썼다. 똑같은 이력서를 지원 회사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회사의 비전과 미션, 창립자의 명언까지 꼼꼼히 공부한 다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했다.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졸업식 전에 경기도에 있는 중견기업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제 취업을 했으니 더 걱정할 것이 없을 거란 순진한 생각을 하던 때였다.


입사 한 달 전에 수원으로 지낼 곳을 구하러 갔다.

대학을 다니던 당시는 엄마가 하루를 벌어 자식 셋을 하루 먹여 살리던 때였다. 엄마가 하루 버는 걸로도 부족해 세 남매가 모두 쉬지 않고 용돈벌이로 알바를 했다. 집에 원룸 보증금 같은 여윳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선택지가 없으니 오히려 쉬웠다. 고시원이라는 좋은 거주 형태가 있으니 보증금 30만원 정도를 먼저 내고 앞으로 월급을 받아 고시원비를 내면 되겠단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알뜰 살뜰히 저축을 해서 원룸 보증금이 모아지면 이사를 할 계획이었다. ‘한달에 백만원씩 저금하면 3개월이면 원룸으로 갈 수 있겠지? 그럼 3개월만 버티면 되겠다. 잠깐이니까 고시원도 지낼만 할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복수전공이 경제학이었는데도 역시 공부와 현실의 괴리는 만만치 않았던 걸까. 넉넉치 않는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벅찼다. 거기에 더해 첫직장이었던 이른바 좋.소.기업은 사내 직원 경조사에 강제로 전 직원들이 찬조를 해야하는 곤란한 전통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해외지사 이사의 자녀 결혼 축의금까지 삥을 뜯기듯 납부하다보니 돈이 줄줄 샜다.

잠깐일 줄 알았던 고시원에서 어쩌다보니 무려 6개월을 지냈다.


어쨌든 6개월이 지나 300만원을 모았고 들뜬 마음으로 원룸촌이 즐비한 동네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근처에 대기업 공장이 있어서인지 늘 수요가 많은 탓에 원룸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았다. 보증금은 500이 기본이고 그러고도 월세를 40만원씩 내야했다. 이미 충분히 비싼 것 같은데 관리비 별도란 말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과연 이 돈으로 방을 구할 수나 있을까 생각하며 퇴근 후 지친몸으로 이동네 저동네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거의 포기하기 직전일 때 들렀던 부동산에서 적당한 방이 있다며 보증금 300짜리 방을 보여주셨다. 2평 고시원에 살던 내게 그 방은 천국이었다. 고시원에선 혼자 누워있어도 침대가 너무 작아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다 잠결에 벽에 어깨를 박은 적이 몇 밤이었던가. 첫눈에 반한 원룸 방은 서너명이 누워서 굴러다녀도 될 듯 널찍했다. 풀옵션이라 세탁기, 티비, 냉장고에 옷장까지 갖춰져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흥분하게 만든 건 나만의 화장실이었다. 이제 공용 샤워장을 쓰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과 주방에서 그릇과 식기를 함께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흔치 않은 매물이란 말에 10만원을 계약금으로 덜컥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들뜬 마음이 사그러지면서 현실적인 고민들이 들기 시작했다.


첫 입사한 회사를 6개월이나 다녔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제발 나 좀 누가 안 쳐주나, 그럼 출근 안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으로 횡단보도를 느릿느릿 걸었다. 아침 7시반에 출근해 저녁 7시반에 퇴근하는 기이한 근무시간에 대해 누구도 목소리를 내는것 같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축의금을 낼 때마다 사기 결혼식이라도 한번 치르고 퇴사해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회사에는 그 흔한 맥심 커피도 없었다. 회사를 자신의 공간처럼 여기고 협력심을 기르라는 이유로 사무실 청소를 직원들이 모두 다함께 해야했다. 무엇보다 여자들은 승진이 안됐다. 남자들은 3년만에 주임도 되고 대리도 되었지만, 여자들은 7년을 다녀야 첫 승진을 할까말까였다.

이런 고민들로 하루하루가 괴로웠는데 지금 원룸을 계약하면 1년을 꼬박 더 다녀야 한다.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과연 이 동네에 있는 다른 회사들 더 좋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입사 3개월이 될 때부터 퇴사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지만 늦은 나이에 취업한 터라 1년은 채워야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고시원을 벗어나 원룸으로 가면 당장 내 생활에 숨통은 트이겠지만, 내년을 생각했을 때 현명한 방법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결국, 장기적으로 희망이 없으니 여길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시원에서 더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동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저 죄송한데 생각해보니 원룸 계약을 못할 거 같아요.

/ 아니 왜요? 방에 문제 있었어요?

- 그게 아니라 직장을 오래 못 다닐 거 같아서요.. 죄송해요, 계약금 못 돌려받는 건 아니까 포기할게요.

/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그리고 계약금만 날리는게 아니라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내야해요. 계약을 안하더라도요.


뭐라고요..? 방을 포기하고 계약금을 날리는 것도 속상한데 중개비?? 중개비는 한푼이 아쉽던 내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놀라서 후다닥 검색해보니 이미 계약을 도와준 사람에겐 중개비를 받을 권리가 발생한다고 했다. 돈도 날리고 수수료도 내야한다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되는 일도 없는 인생에 굳이 이렇게까지 뭐가 안 풀릴 수가 있나 싶었다. 이 정도면 저 위에 누가 나를 시험하는 게 아닐까? 얘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말문이 막혀 휴대전화를 들고 바보같은 ‘아..’소리만 내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탄식하듯 나를 안타까워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에구.. 근데 무슨 일로 그러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방이 문제면 내가 다른 곳을 더 찾아봐줄 수 있어요.

- 아니에요, 방은 너무 좋았어요. 지금 고시원 살고 있어서 저도 꼭 이사하고 싶었는데.. 1년이나 이 회사를 더 다닐 자신이 없어서요..

/ 기간이 문제에요? 그럼 혹시 계약기간을 6개월로 해주면 괜찮겠어요?


세상에! 이런 옵션도 가능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지금이야 월세 계약도 여러번 해봤고 되든 안되든 일단 말이나 꺼내보자 하는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엔 사회경험도 마음의 여유도 부족해 속으로 끙끙 앓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원룸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 내가 찾는 월세의 물건도 찾기 힘들었는데, 사장님은 동네의 일반 보증금보다 200만원 부족한 내 보증금을 듣고도 부지런히 좋은 방을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못하겠다고 하자 직접 건물주를 설득해 6개월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앞선 통화를 끝낸 후 몇분 후 사장님에게 다시 전화를 받았다. 건물주한테 사회 초년생이라 도와달라했더니 흔쾌히 6개월 계약에 오케이 하셨다고. 주중에 시간되면 들러서 수정돤 계약서에 사인하고 가라고.


순간, 앞서 한 고민들 - 왜 내 인생만 이렇게 안풀리나 했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드디어 두팔 두다리를 뻗고 잘 곳이 생겼다는 기쁨에 길에서 방방 뛰었다. 게다가 6개월 뒤엔 입사 1년이라는 경력을 만듦과 동시에 방 계약도 끝나니 부지런히 준비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됐다.


다음 날 퇴근하고 해질녂에 방문한 사무실. 그 전에는 미처 보자 못했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종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1년에서 6개월로 수정된 계약서를 확인하고 사인을 하면서, 사장님은 건물주 분이 어떤 분들인지 얘기를 해줬다. 건물주는 은퇴하고 시골에 사시는데 분들인데 여유도 있고 마음씨도 좋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흔쾌히 알겠다 하시더라고. 그런 얘길 듣고있으니 과연 내 인생에 월세 받아서 여유있게 사는 삶의 선택지가 올까 싶은 한탄과 배려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올라왔다. 인상 좋은 중개인의 너그러운 목소리에 긴장이 풀린건지 평소에 나라면 모르는이에게 하지 않을 푸념이 튀어나왔다.

- 고마운 분들이네요. 그리고 부러워요.. 제 인생엔 그렇게 월세 받아 사는 날이 올까 싶어요. 평생 벌어도 안될거 같은데.


그리고 사장님께서 반문하며 하신 말씀.

/ 무슨 소리에요, 은퇴한 사람들이 뭐가 부러워. 아가씨처럼 젊은게 부럽지. 그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월세받는 것보다 아가씨 나이가 훨씬 부럽다 할걸? 그런 경제적 여유는 열심히 살다보면 다 오니까 부러워하지마요. 지금처럼 젊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을때가 좋은거에요. 나중엔 다 그렇게 되요.


이 날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은 묘하게 나를 토닥이는 느낌을 받았고 그 후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다.


그동안 야무지고 꼼꼼하게 알아보는 성격 탓에 ’넌 뭘 하든 성공하겠다‘하는 말은 꽤 듣고 살았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들을때마다 정작 기쁘지는 않았다. 진짜 내가 성공하리란 믿음 보단 어린 나이에 억척스러운 면을 들킨것 같아 괜히 면구스러웠다. 그런데 사장님이 해주신 말은 달랐다. 나의 푸념에 반색하며 해주신 말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것만 같은 건물주의 경제적 여유보다 진심으로 내가 가진 시간을 더 가치있다 여겨주는 듯 했다. 게다가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 여유가 생길거라는 말도 숱한 건물주를 마주했을 그가 하니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 벽에 걸린 글귀도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그분이 으레 젊은 손님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인생을 이해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누군가는 그 사장님의 호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함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덧 사회생활을 10년째 하다보니 이제는 안다. 지친 일상에서 그런 친절함이 얼마나 만들어내기 힘든 일인지. 게다가 보증금도 부족한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건 그때 그 부동산 사장님이 유일했다.


그렇게 얻은 나의 첫 원룸은 내게 더할나위없는 안식을 주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쉴수 있는 공간이었다. 작은 문고리가 아닌 철문으로 지켜지는 나의 공간. 온도도 습도도, 채광도 모두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작은 성.

그 후로도 숱하게 이사를 하며 자취방을 옮겨 다녔지만 지금도 그때의 방 풍경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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