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가까운 지인 혹은 옛 연인인가 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연한 남남이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딱 한번 나의 방 계약을 도와준 부동산 사장님, 업무 관련으로 단 하루 식사를 같이했던 거래처 직원 등. 곰곰이 떠올려보면 내 인생엔 이렇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무수히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도 남지 않지만, 유난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때때로 그들과 나눴던 짧은 대화는 오랜 시간 함께 보낸 친구나 주기적으로 만났던 정신과 의사보다 더 큰 위안이 되어 내 안에 남아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지금도 그때 대화를 나눈 순간들이 선명히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들이 내게 준 것은 짧은 위로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오래도록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마법의 치료제처럼 유용하게 쓰였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다. 나 혼자만 기억하는 대화를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당연히 그들이 보게 될 가능성은 제로겠지만, 혼자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고. 그렇게 말해줘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세상엔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지지만,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짧은 순간들도 많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쓴다.
내가 받은 위로가 누군가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