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키 Aug 29. 2022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잔소리가 문제인가 잔소리 들을 짓을 하는 게 문제인가

또 별 것 아닌 걸로 화가 폭발해서 배우자에게 혼자 쏟아 붓고는 집을 나왔다.


모처럼 쉬는 날이니 둘이 같이 편히 쉬는 주말을 상상했었는데, 늘 그렇듯 사소한 일에서 이성의 끈이 놓아졌다.


발단은 단순했다. 오후가 되어 늦은 첫끼를 준비하면서 암막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는 나와 하루종일 암막커튼을 친 상태로 어둡고 아늑하게 있고 싶다는 그.

도대체 암막 커튼을 쳐놓고 집 안에 전깃불을 켜는게 무슨 짓인지 이해가 안되, 커튼만 걷으면 이렇게 밝은데 왜 어둡게 한 상태로 불을 켜냐는 내 말에 그가 커튼을 걷지 말라고 아이처럼 징징대는 소리에 화가 폭발했다.


분노 포인트 1

도대체 하루종일 햇빛도 안들어오게 해놓고 살고 싶은 이유가 뭐냐는 말에 배우자는 그냥 본인이 원하는 것이니 이해가 안되면 이해하지 말라고 했다.

특별한 이유없이 어두운 방이 좋다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있기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 같아 게으른 모습에 화가 났다.


분노 포인트 2

오전에는 쉬고 있을 걸 배려해 집을 어둡게 조성해두었다. 요즘은 초저녁부터 집을 어둡게 하니 최소한 식사할 때만이라도 환기를 시키며 집에 햇빛을 좀 들게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싫다고 말하는 게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싫다싫다싫다라며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


분노 포인트 3

그는 나의 잔소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고 한다. 스스로도 잔소리가 많은 타입이라 가급적 간섭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과연 원하는대로 하게 두면 제대로 된 사람처럼 생활을 할지 의구심이 든다.

하루종일 음식을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누워있다. 하루종일 방을 어둡게 해둔다. 음식의 종류도 건강하지 않은 것들 뿐이다. 과연 이런 모습들도 동등한 배우자로 선택을 존중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금 더 건설적인 삶의 방향으로 같이 노력했으면 하는 욕심이 앞설 때마다, 나는 잔소리꾼이 되고 그는 선량한 피해자가 된다.

가족간에도 바운더리가 중요하다지만, 어디까지 용인해야하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릴리는 타인의 선택은 타인의 책임이라고 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질 수 없으니, 가족이 스스로 건강을 망치더라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처음엔 바운더리를 잊고 책임감에 눌려 잔소리를 했던 것 같으나, 나중에는 타인의(가족이지만 내가 아닌) 생활방식들이 내게 피해를 줄 까봐 두려워 더욱 control freak이 되는 것 같다.


고작 거실에 암막커튼을 치네마네 하는 문제로 인생에 피해를 주니마니하는 얘기까지 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안타깝지만 애초에 유착관계 형성이 잘못되거나 어려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피양육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를 형성할 때 과거의 트라우마가 오버랩된다고 한다. 배우자의 건강치 못한 생활습관들은 과거에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나의 양육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짐이 될지에 대한 두려움에 쉽게 잠든 날이 없었다. 어쩌면 일부분일 뿐인 배우자의 모습에서 그때의 잔상을 목격하게 되면 이미 겪어본 공포가 떠올라 필요 이상의 화가 솟구친다.


지금 나와 살고 있는 사람은 나의 양육자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 만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과거의 잔상을 지울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돈은 빌려줄 수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