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을 가슴에 품어 늘 고단한
어제 본 달맞이꽃 오늘도 길모퉁이에서
이정표처럼 나를 안내한다.
어린 삼남매 갈라진 입술에
들기름 솔솔 무친 나물 반찬
찰진 옥수수 알알이 묻히겠다고
땡볕에서 흙을 거르다
누렇게 내려앉은 자글자글한 엄마의 주름이
달빛을 기다리다 시간에 그을린
달맞이꽃의 노란 주름과 애달프게 닮았다.
여기 돌멩이 있다
더우니 모자 내려 써라
딸과 산책하러 나온 엄마가
발 대신 입을 쉴새 없이 놀린다.
아들 둘이나 낳았겄만
넘어질까 걱정되는 덜렁댕이 철부지 딸이라며
걸음걸음마다 애잔한 훈수를 둔다.
짙은 녹음이
탁한 날숨에 눅눅해진 피로도
금세 푸르른 기운으로 돌려주건만
휜 허리와 홀쭉해진 다리로 종종걸음을 놓는
예순을 넘긴 한 여자의 초록빛 젊음은
쉬이 뱉어내지 못하나보다.
겹겹이 마른 채 낭떠러지에 간신히 붙은 낙엽을
애먼 바람이 대수롭지 않게 밀어낸 뒤
예순의 여자와 마흔의 여자에게도
걸어왔던 길을 다시 가라고 재촉한다.
솜털 같던 여아가 어느새
까까머리가 예쁜 사내아이 둘을 낳고
우람한 둘째 손주는
할미의 쪼그라진 품에 안겨 칭얼대다가
결국 엄마의 배위에서 잠이 든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담은 달맞이꽃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 다시 필 때면
어두운 골목의 스산함을 비집으며
딸을 기다리느라 서있던 엄마가
달맞이꽃으로 피어있겠지.
난 그 길가에서 내 아이들을 기다리겠지.
****사진은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 정원에서 소녀처럼 거니시던 엄마의 뒷모습과 풍경들이에요.
2년 전 엄마와 함께 이탈리아와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당시 허리가 약간 좋지 않으셔서 못 갈뻔 했는데 그때 가길 잘했네요.
예전에 엄마 생각하며 썼던 글을 올려봤어요.
무뚝뚝한 딸인데 SNS를 전혀 못하시기에 용기가 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