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위가 아닌 과정을 보았다
이루어낸 결실을 뜻하는 성과. 이 단어의 측면에서 보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팀의 메달 수확은 확실히 부실했다. 금 6, 은 4, 동 10을 기록하며 종합 순위 16위로 마무리했다. 지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 9, 은 3, 동 9와 비교하면 종합 순위 선정의 지표가 되는 금메달 획득이 3분의 2로 줄어들었고,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던 2008 베이징 올림픽 기록(금 13, 은 11, 동 8)과 견주면 금메달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종합 순위 측면에서 볼 때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건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21년 만이다.
특히 한국인의 '메달 밭'으로 통하던 태권도나 레슬링 같은 강세 종목에서 각각 노골드와 노메달에 그친 건 뼈아픈 결과다. '효자' 야구는 선수들의 나태함, 팀전술의 안일함, 승리의 절박함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집 나간 탕자가 됐다. 물론 메달의 색깔과 톱 랭킹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성과적인 면면에서 21년만에 다시 받아든 '10위권 밖' 성적표는 여러모로 아쉽다.
그럼에도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건 성과가 아닌 과정에 있었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높인 스포츠인의 도전 정신과 불굴의 투지를 바탕으로 세계 랭킹이 무의미할 정도로 대역전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의 사투와 연일 기승을 부리는 폭염과의 전쟁으로 힘겨웠던 국민에게 지난 17일간 희망과 웃음을 안겼다. 스포츠인의 정신력으로 중무장한 선수들이 한국 최고 기록 경신과 자신과의 경쟁을 뛰어넘어 한계마저도 돌파하려는 모습에 열광했다.
높이뛰기 우상혁은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한국 육상밭에 희망을 심어 뭉클한 싹을 틔웠다. 예선부터 치고 올라와 결선까지 올라가더니 1차 시기들을 가볍게 성공하며 2m 35cm로 한국 신기록을 썼다. 이는 지난 1997년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이진택이 세운 2m 34cm를 뛰어넘는 기록이자 2020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 남자 4위 랭킹이었다. 높아진 기록만큼이나 여유 넘치고 기품 있던 스포츠맨십이 돋보였다. 긴장을 풀 겸 관중과 호흡하기 위해 박수를 유도하는가 하면 거듭된 기록 경신 실패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환한 미소와 힘찬 경례로 감동을 선사했다.
불굴의 투지는 폐막식을 하루 앞둔 막바지에도 터져나왔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인기 종목인 근대 5종을 알리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던 전웅태는 근대 5종 올림픽 경기에서 당당히 3위 동메달에 오르며 스스로와의 다짐을 현실로 이뤄냈다. 근대 5종 경기 올림픽 출전 57년 만에 한국에 첫 메달을 안긴 전웅태 선수 다음으로 결승점을 찍은 4위 정진화의 도전 정신도 연이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두 선수의 진한 포옹은 순위와 경쟁을 뛰어넘는 스포츠인의 격려와 의지로 큰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온 국민에게 도쿄의 설레는 마지막 밤을 선사했던 배구 경기는 올림픽 감동의 백미였다. 특히 김연경의 리더십과 투혼의 품격은 스포츠 정신의 대미를 장식하며 아쉬운 성적표를 만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에 앞선 월드 리그에서 승리를 거의 따내지 못하며 최약체 국가로 꼽혔던 만큼 성적은 기대 밖이었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괜찮아. 후회하지 말자"라고 동료들을 끊임없이 격려하며 '원팀'을 만들어갔고,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과 쉽게 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강팀들을 연이어 제치며 잠 못드는 도쿄의 밤을 안겼다. 김연경을 필두로 저마다 12인이 함께 도전한 라스트 댄스급 경기력은 매 경기 전율을 선사하며 '아름다운 4위'를 선물했다. 귀국 직후에도 김연경의 스포츠인 품격은 이어졌다. '6억원 후원금 감사 강요 논란' '대통령 감사 인사' 등으로 소란스러웠던 상황들을 대수롭지 않게 정리하며 감동의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9년만에 재개된 경기에서 정상을 지킨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 금메달 김정환 구본길 오상욱 김준호, 여자 펜싱 에페 단체 은메달 송세라 최인정 강영미 이혜인, 양궁 최초 3관왕 안산, 양궁 2관왕 신예 김제덕, 기계체조 남녀 도마 신재환 여서정 등 메달리스트뿐만 아니라 중국 선수들이 독식한 남자 다이빙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 우하람,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5위로 아시아 신기록을 쓴 황선우, 배드민턴 여자 복식 4위 이소희 신승찬 등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스포츠인의 품격은 2020 도쿄 올림픽에 드리운 코로나의 우울한 그늘을 벗겨낸 당당한 우아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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