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4)
할아버지,
너무 부끄러워하시지 않아도 돼요. 자존심 상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세상에 대변 소변 안 보고 사는 사람 없는 걸요. 오히려 많이 드시고 힘들지 않게 잘 내보내실 수 있다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인걸요.
기저귀 찬 본인 모습에 한 번씩 서러워서 눈물 나신다는 거 알아요.
차라리 옆 침대 할아버지처럼,
정신도 같이 어려져버려서 내가 기저귀를 차고 있는지, 똥을 눴는지, 그 똥을 손을 만졌는지 이런 거 하나도 모르고, 수치심조차 몰랐다면 좋았을 걸 생각하시는 것도 알아요.
이럴 거면 차라리 빨리 죽기나 하지.
살아도 수치스럽고, 살아도 아프고, 살아도 외로운 삶을 왜 이어가야하나, 죽을 용기도 자유도 없다면서 한숨 쉬신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잖아요.
할아버지가 젊고 기운이 넘치던 어떤 시절, 지나가던 아이 업은 엄마가 들어가기 편하도록 가게 문을 잡아줬던 것, 길가에 굶주린 강아지에게 먹을거리를 던져줬던 것, 형편 좋지 않은 친구 돼지껍데기 소주 한 병 사줬던 것 …. 이런 것들이 그 시절 할아버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별 것 아닌 도움이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두고두고 기억되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지요. 그 때의 할아버지는 체력도 마음도 지금보다 여유로우셨을테니까요.
생의 아주 사소한 도움, 배려들을 받아왔고 또 나눠주고 그런 거겠죠.
이제는 다른 여유로운 누군가의 도움으로, 잊고있던 지난 선행을 돌려받는다고 생각하시고 부끄러워 마세요. 저도 그럴게요.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게 아니라 보답하는거라고, 그리고 나이들어서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질 미래의 제 자신을 위해 적립해두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할아버지의 인생을 빛나게,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오셨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지금 상황이 우울하고 답답해 보이실 수 있을거예요. 하지만 과거에 그러셨던 것처럼 지금도 이 순간의 어려움에 지지 않고, 삶과 죽음의 그 어떤 무게에 눌리지 않고, 당당히 버텨내시는 과정이라고.
전혀 위축되지 않으셔도 되어요.
회사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월급으로 가족들과 멋진 외식을 하고, 마련한 목돈으로 집을 사던 순간만큼이나, 육체적인 통증을 참아내고 가물가물해지는 기억력을 다잡는 지금 이 순간도 의미있다는 걸. 할아버지의 의지와 노력이 그 이상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게요.
그러니 지금 모습을 부끄러워 마세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