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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Apr 29. 2019

당신은 나의 동반자

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5)

드물지만 부부가 함께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는 경우가 있다.

병원에 오시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배우자를 잃고, 전국 각지 뿔뿔이 흩어진 자식들에게 기대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입원하신다는 걸 감안하면, 부부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좋든 싫든 한 세월을 같이 보낸 삶의 동료가 있다는 것. 혹은 늙고 무기력해진 내 곁에 누군가 비슷한 속도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아직 그만큼의 시간을 한 사람과 함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지만, 요양병원에서의 삶에도 배우자의 존재가 큰 힘이 되지 않을까?




-


병원에 두 부부가 있다. 있었다.


파평 윤씨 양반 가문이라며, 어릴 때부터 침은 원래 좋아했다며, 말씀도 시원시원하니 아픈 곳도 하나 없다는 씩씩하신 할머니.

그리고 그 나이대 할아버지 중에서 유독 큰 키와 골격, 반전의 동글동글 곰돌이 얼굴 할아버지.



공무원으로 평생 일하셨었다는 꼬장꼬장 자존심 강한 할아버지와 불편한 다리로 휠체어를 끌고 매일같이 할아버지를 찾아보러 가시는 할머니.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병실에 들어오면 할아버지는 옆의 서랍에서 주섬주섬 믹스커피를 꺼낸다. 두 사람 몫이니 종이컵도 두 개, 믹스커피는 4봉지로 진하게. 할머니와 잠깐의 커피타임을 가진다.

"오늘은 밥 좀 자셨수"

안부 한 마디 나누고, 휠체어 이동을 도와줄 보조인이 지겨워하기 전에 눈치껏 커피 한 잔을 후루룩 비우신 뒤,
"약 잘 챙겨드시고 계시요"

돌아 나가신다.




앞서 곰돌이 할아버지 커플은 애틋한 인사를 이어갈 수가 없는 것이, 각기 다른 층 병실에 계시기 때문이다.

사연인즉슨, 처음 입원하셨을 때는 같은 층 남녀 병실에 각각 계셨었더랬다. 같은 층이니 수시로 오가며 서로 간식도 챙기고 안부도 챙기면서 마음의 의지를 하고 지내셨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병동 로비에서 다른 할머니의 손을 잡고있는 할아버지 모습을, 윤씨 할머니가 목격하고 만 것이다.

정말 의심할만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 할머니는 분노하셨다. 병원에서 큰 소란이 일자 간호사들이 할아버지 병실을 위층으로 옮겨버렸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치매로 인지기능이 약간 떨어져있으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으러 가겠다고 낮이고 밤이고 침대에서 뛰쳐나와 복도를 뛰어다녀서 간호사 간병사들이 고생을 하셨었다고.


외로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병원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시면서 먹거리도 나누고 말동무도 하시는 경우도 있고, 또 누가 물리치료를 먼저 받느냐 티비 채널을 누구맘대로 돌리느냐 하는 등의 사소한 문제로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병원이라도, 어르신들이 모여있어도, 사람 사는 곳인 건 마찬가지어서 세상사의 제각기 다른 듯 비슷한 그런 일들이 여기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할아버지는 위암 대장암 수술을 모두 하셨었더랬다.

항상 속쓰림 복통을 달고 있어 식사도 힘들고 그나마도 점점 식사를 거부하시니, 상태가 점차 악화되던 어느 날에 중환자실로 옮겨지시게 되었다.

할아버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 할머니는 내색하지 않으셔도 마음 한 편으로 초조해 하시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 영감 침 놨어예?"

"오늘도 6층 갔다 왔는가?"

"아이고 아 들이 서인데(애들이 3명인데) 앞에 둘이는 공부를 많이 못시켰어도 참 착해 애들이. 막내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공부를 잘 했다꼬. 그기 참, 지가 참말로 잘났어. 예? 안그래요? 참말로 잘났제이. 지혼자 뭐가 그래 잘나가 다 안다꼬 부모를 갖다가 어? 병원에 갖다 넣어놓고. 둘이서 우리 양반 연금 나오는 거 받아가 불편한 거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그냥 그래 둘이 냅두면 되겠구만. 공부시키놨더니…"


할머니의 걱정과 원망이 늘어나는만큼 매일매일 할아버지의 건강도 나빠졌다. 음식을 전혀 못드시고 수액으로만 연명하시기를 몇 주. 밤에 보이는 이상증세도 심해졌다. 딸이 찾아와서 할아버지에게 사정했다. 포기하지 마시고 기운내시라고.

할아버지는 간호사들과 가족의 모든 협박, 회유, 부탁에도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고통에, 치료에,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에, 혹은 삶과 죽음에 대항했다.


할아버지의 저항은 오래지 않았다.

남겨진 할머니는 담담하셨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보이는 곳에서는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으셨다.


이제는 할머니도 자녀분들을 따라 퇴원하셨지만, 아직도 나는 할머니가 계셨던 병실에 들어가기가 버겁다.

할머니의 비를 쏟아내리기 직전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먹구름 같던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는 '죽음'이라는 결말이 코 앞에 도사리고 있어서 보다 극적인 사연과 상황들이 만들어진다.

60년을 함께한 부부가 영원히 이별하는 과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시간만큼이나, 지금도 이별을 향해 나아가는 어떤 극적인 순간일지 모른다.

내 곁의 누군가를 돌아보며 감사히 여기자는 뻔한 다짐을 이렇게 또 한 번 되풀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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