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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Apr 29. 2019

오늘은 수요일

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6)

어머니, 침 놓으러 왔어요. 저 알아 보시겠어요. 끄덕.

어머니 허리, 내 허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바디랭귀지를 덧붙인다, 허리 침 놓을게요.

어잉, 근데 오늘이 무슨 요일이라? 오늘 수요일이요. 수요일. 네, 수요일요.

어머니 허리 좀 보여주세요.

할머니 팔을 들어 침대 난간에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올려드린다. 할머니가 힘을 줘서 난간을 당기면 조금 더 돌아누우시기 쉽도록 몸을 살짝 밀어드린다.


근데. 네, 어머니. 지금 몇시라? 흘낏 시계를 보고 다시 확인하지만 역시나 비슷한 시간대, 규칙적인 일과.

어머니, 오후 두 시예요. 두 시. 네, 두 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까 의사소통이 잘 될까 노파심에 오른 검지 중지를 펴 보인다. 두 시.

그제서야 어딘가 안심된 듯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누우시는 할머니.





할머니와 이 대화를 반복한 것이 수십 번.

다른 간호사, 간병사, 의사, 가족들, 방문객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할머니와 얘기를 하고 싶다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듯 그 날의 요일과 시간을 먼저 말해서 말문을 열어야 한다.


어쩌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할머니의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규칙적인 식사시간, 소등시간이 있다 한들 단조롭기 짝이없는 요양병원 생활. 보행기에 의지해서나마 걸으실 수 있는 어르신들은 산책도 하고 다른 환자들과 친목 생활도 하지만, 와상 생활밖에 하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시간은 막막대해(寞寞大海)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조난당한 채, 조각배 위에 홀로 누워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듯. 낮에 타오르는 햇살, 밤의 추위로 어렴풋이 시간의 흐름은 알 수 있지만 그 뿐. 이 바다의 끝이 있을지, 언젠가 육지나 섬에 도달할 수 있을지, 혼자서 시간의 바다를 무기력하게 부유한다.


요일을 묻고, 시간을 묻는 것은 어쩌면 막막한 항해 속에서 동서남북이라도 가늠해보려는 할머니의 노력이 아닐까.

아니, 그저 치매 할머니의 습관처럼 남아버린 아무 의미없는 문답일 수도 있다.




어머니. 어잉. 침 놓으러 왔어요. 아. 오늘 무슨 요일이라? 오늘 수요일이요. 아. 지금 몇 시라? 오후 두 시요.

두 시.

밥 묵었어?
처음 밥 먹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음을 인정해야겠다.

그 전까지는 대답을 이해하실지 확신 없이_사실 이해하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고_ 단순히 질문에 장단을 맞춰 드리려 대답해왔던 게 사실이니까.

어머, 어머니. 네, 먹고 왔어요. 어머니도 식사 하셨어요? 어잉.

역시나 그 뒤로 다른 화제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며칠 후에도 다음 주에도 '밥 먹었어?' 질문은 계속 되었다.





-





철학자 칸트와 같이 엄격한 시간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어느 정도의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유지해야만 한다. 규칙적인 일상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사람다운 삶을 사는데 필수적이다. 여행과 같은 일시적 일상에서의 일탈은 자유를 느끼게 하지만, 장기적인 일상의 붕괴는 삶의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일상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졌다. 몇십 년 평생을 해오던 살림 혹은 돈벌이, 대인관계, 여가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고, 오로지 식사 시간만이 규칙적일 따름이다(항상 누워있다 보니 수면시간조차도 엉망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몇 년 째 치매에 걸려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할머니도 옆에 사람이 지나가면 '아이고 이거 나물 다 팔아야 집에 가는데 비가 오네! 우리 아들이 이거 다 팔았다 하든가?'하며 평생 해오던 장사를 아직 걱정하고,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쌀을 씻어야 한다고 혼자 뜨거운 물을 받아오다가 화상을 입으신 할머니도 있었다.



신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논리적 사고가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허용될 수 있는 일상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요일과 시간을 묻고 답하는 짧은 대화가 망망대해에서 바라본 작은 별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90세 치매 노인들에게 신체적 의미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보다는 어쩌면, '안녕하세요, 침 놓으러 왔어요!' 밝은 목소리로 소소한 일상을 더해 드리는 것이 더 큰 치유일 거라고.


오늘도 처음 듣는 질문인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드릴 것이다. "오늘 수요일이예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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