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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Jul 17. 2019

죽음에 서명하다

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7)

DNR.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을 하지마시오.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는 환자분들 중 많은 수가 연로하셔서, 병이 너무 진행되어서, 가족들에게 금전적 책임을 지우기 싫어서 등등의 여러가지 이유들로 치료를 포기하신다. 희망없고 지난할 치료의 과정을 견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선택. 심장과 폐가 활동을 멎는다 해도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생명유지 노력을 하지 마시오 하는, 내 몸의 주인으로서 내리는 명령.



 DNR 동의서는 우리나라에서 2018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호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환자가 병원에서 억지로 인공호흡기나 독한 약물 등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 유지나 생명 연장을 하지않는 것에 동의하는 문서이다. 한국은 안락사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로 DNR 또한 만성질환자에 한해서만 시행되고 있으며, 환자의 의식이 없다해도 인위적으로 호흡기를 떼내어 심정지를 시키는 등의 행위는 DNR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즉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제도는 현재 한국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수동적으로 DNR 동의를 통해 죽음이 찾아 왔을 때 따라갈 수 있게는 해주세요, 억지로 나를 붙잡지는 마세요 하는 정도의 의사결정권이 있는 것이다.



 환자 본인이 충분한 의사표현을 할 기회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의식이 명료하지 못하시다면 어려운 선택은 가족들의 몫이 된다. 내 손으로 아버지의, 어머니의, 혹은 배우자의 마지막을 결정한다는 무게감. 





나라면, 

DNR 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안락사라도 내 의지로, 내가 원할 때, 마무리를 하고 싶다. 

아직 의식이 있을 때 차분하게 마지막을 정리하고 마음을 준비해서 품위있게 마무리 짓는 것. 


 하지만 내가 부득이하게 부모님의 마지막을 결정해야 한다면? 

그 때도 내가 엄마의, 혹은 아빠의 품위와 존엄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결론지어버려도 되는 걸까. 

 병원에 입원 중이시던 할머니도 평소에는 '얼른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사시다가 막상 병세가 악화되어 대소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각종 수액, 주사, 약을 줄지어 보게 되면 덜컥 겁을 먹으셨다. 죽음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 두려울 수 밖에. 

 나도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이 되면 삶에 무척이나 미련이 생길지 모른다. 가족들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밖의 풍경이라도 한 번 더, 하다못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라도 한 번 더 보고싶을지도. 

 혹은 남겨질 가족들이 욕심으로 떠날 사람을 붙잡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아직 운 좋게도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 기분을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가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고통이라도 줄여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결정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존재와 단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욕심, 함께한 시간동안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무겁다.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음에도 평소에는 죽음에 대해 정말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새삼 느낀다. 반려묘의, 부모님의 마지막을 조심스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밀어닥쳐오니까. 내 스스로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걸 알아서 미리 차단해버리는 걸 테지. 




 요양병원에 근무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 

 어느 정도는 덤덤해진 것도 같다. 


 오늘도 2일 가량 병세가 악화되시던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고, 지켜보시던 가족분들이나 병원 모두 할머니의 죽음을 되돌리기 위한 무리한 노력없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연세도 많으셨고 병환도 오래되셨으니까. 


 그래서 잠시, DNR과 존엄한 죽음, 죽음을 선택할 권리 …. 이런 것들에 대해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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