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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Apr 29. 2019

죽음의 가까이에 머무른다는 것은

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1)

요양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주변 친인척분들을 찾아 한번이라도 요양병원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바로 '아!'하고 떠올릴 바로 그 냄새.


병원에 가족 지인을 방문오시는 분들도 지나가는 직원들을 향해 "어유, 냄새 너무 나지 않아요?" "아니 이래서 입맛 떨어져서 밥은 어떻게 먹어?" 질색하는가 하면,

늘 거기서 일하던 직원들도 한번씩은 창문 열고 환기를 시켜야겠구나 고개 젓게 하는 아주아주 강렬한 냄새.


이 냄새를 분석해보자면,

첫째, 혼자서는 대소변을 처리하기가 힘들어지신 분들이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볼일을 보실 때마다 새로 올라오는 분변 냄새.

둘째, 혼자서 목욕을 하기가 힘들어져서 자주 씻지 못하고 한 자리에 오래 누워있다보니 진해진 체취.

셋째, 자리에 눕거나 앉아서 식사를 겨우 드시는데, 그마저도 주변에 흘리는 경우가 많다보니 쌓인 음식냄새.

 그리고 환자분들의 안전문제 및 병원 내 온도 유지(환자분들이 유독 한기를 잘 느끼시므로) 문제 때문에 각종 문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 어려운 상황과 맞물려 냄새들이 오래오래 고여있으면서 요양병원 특유의 퀘퀘한 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내 코에는 이제 익숙해져버렸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냄새라서 유달리 견디기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사람의 분변 냄새와 오래 묵은 체취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다움'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혹은 내가 누군가의 아들 딸 부모 상사, 어떤 의미있는 존재로 살고 있는 듯 해 보여도 사실은 먹고 싸고 늙어가는 육체에 얽매인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고 새삼 일깨워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잊고 지내고, 또한 잊고 싶어하는 나이듦과 죽음.

아름다운 죽음, 명예로운 죽음, 짧고 간결하여 고통없는 죽음. 그러한 죽음은 없다. 적어도 내가 본 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의 죽음은 절대로 의연해질 수 없는 문제였다.

 100살이 넘어서 크게 아픈 곳 없이 지내시다가 1주일 가량 몸이 쇠약해지시더니 잠든 사이에 살짝 떠나가신 죽음은 타인의 시선으로 '호상(好喪)'일 수 있겠으나, 자신의 죽음을 두고 그 무게를 가벼이  '좋은' 죽음이라고 평가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동네 한의원에서든 요양병원에서든

어르신들의 공통적인 단골 멘트들이 있는데, 그 중 단연코 1위는

'아이고, 내가 뭐하러 이래 오래 살아서 주변에 욕보이겠노. 얼른 죽어버려야지. 이래 오래살아가 뭐하노.' 다.

그냥 미안한 마음에 흰 소리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고,

정말로 나이들면서 생기는 여러 질환의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하소연하시는 분들도 있을테지만.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예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뿐이다.


진심으로 이 상황이 버거워서 죽음을 바라시는 환자분이더라도 정확하게는 '죽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끝'을 바라는 것이다.

나이들면서 예전같지 않은 몸 상태와 각종 질환으로 인한 통증.

식사하는 것, 씻는 것, 움직이는 것, 대소변 보는 것, 삶의 모든 행위들을 남에게 의탁해야하는 상황으로 인한 수치심과 미안함.

요양병원에 자신을 내버려둔 가족, 특히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 서러움.

이 모든 몸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깊은 한숨과도 같은 하소연...



-



할머니, 아니예요. 자꾸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지금 몸이 너무 아파서 그런 마음 드시는거고, 마음이 우울하고 슬퍼서 약한 생각이 드는거예요.

만약에 할머니 몸이 건강해서 하나도 아픈 데 없고 팔팔하다 하면 오래도록 자식들 보고, 맛난 거 드시고, 예쁜 데 구경 다니시면서 삶을 누리고 싶으시지 않으세요? 돌아가시면 그런 거 하나도 못해요.

몸이 옛날 같지 않고 힘드니까. 너무 힘드니까 죽어서 끝내고 싶다 하는데, 죽는 거 그거 하나도 좋을 거 없어요.

저랑 같이 힘내서 기운 내 보아요.




비록,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지만.

비록, 하루에도 몇 사람씩 위층, 옆방, 맞은편 침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바라보아야하지만.

비록,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대소변, 진물, 산소호흡기 낀 입 깊숙이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하고도 낯익은 냄새를 늘 맡으며 지내지만.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잠시 미뤄두고 지낼 수밖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내 삶 내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누군가의 사랑받는 자녀였고, 자랑스러운 가족이었고, 이 순간까지 세상에 휩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굳건히 버티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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