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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Meow Apr 29. 2019

뻔한 이야기라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한의사의 요양병원 근무 일기 (2)

"내 나이가 구십서이('구십삼'의 사투리)야."

"내가 진작에 죽었어야 이런 꼴을 안보는데.

 집에 고마 부엌에 걸어가는데 아찔하이 자빠져뿌린기라. 그래가 머리 다치가 여기 보이제. 눈을 뜨이 대구 **병원이라. 의사가 여기 어딘지 아는교 하는데 내가 어딘지 모르겠소 여기가 어디요? 하는데 보이 병원이라. 보름동안 눈을 못떴다카대.

 내가 6남매를 낳았어. 아들 서이 딸 서이. 아들들이 다 참 잘나가지고, 인물도 훤하고 키도 크고. 회사도 큰 데 댕기고. 딸은 울산에 하나 대구에 하나 가 있고. 근데 고마 다 먼저 가뿌리따 카이. 둘 다 사고로 갔어. 다 키워놨는데.

 우리 집에 참외 농사 지어. 농사짓고 시골 있다보이, 도시 있었으믄 참한 색시 얻었을낀데. 중국 며느리를 들뢌어. 고마 못 된기 들어온기라. 우리 아들은 참 착한데. 며느리 그기 못됐어. 내가 손자 손녀들한테 용돈만 줄라 캐도 인상 팍 쓰는기라. 우리 손자손녀들 다 대학댕겨. 대학교 2학년이라. 
 며느리 그기 내 꼴 뵈기 싫다고 고마 여기 넣어뿌렷다 아이가."



 93살 나이가 무색하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할머니. 입원하신지 보름 정도 되셨을까, 슬슬 인생사를 풀어놓으신다. 할머니 할아버지 한 분 한 분의 인생은 두꺼운 책과 같아서 아무리 무탈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라도 아마 국어사전 두께는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긴 인생사를 연대기처럼 풀어놓으시기 보다는 가장 인상깊었던 일,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일,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했던 일들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곤 한다. 물론... 그나마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신 분이라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주제도 자식들이 될 모양이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단골소재. 아들 딸이 몇 명이고, 다들 어느 지역에 살고, 직업이 번듯하고, 예쁘고 잘생긴 손주들이 있고.

 하나뿐인 예쁜 자녀들, 가족들 얘기야 아무리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겠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라면, 그러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이 저짝동네 입구에서 세 번째 집이라. 창고도 큼직한 게 있고. 내가 몸을 잠시도 못 놀리제. 아 여섯을 키우면서도 잠시도 쉬지를 안했어. 그래가 우리 집이 잘 살아. 가자. 놀러가자 우리 집에 오니라.

 "내가 젊을 때부텀 짜그마하이 키도 작고 살도 없고 했어도 아 여섯 낳고 건강했다꼬. 일도 야물딱지게 잘하고. 근데 고마 일나가 부엌에 나가다가 자빠지가... 그래가 눈 떠보이 대구 병원에 보름 넘게 누워있었다 카대. 여기 보이제 머리에 크게 수술했어. 그 때 자빠지가꼬.

 우리 딸은 울산에 살고, 우리 딸 하나는 대구에 살고. 아들은 착한 아가 고마 중국 며느리를 보더니 며느리 고기 못됐다카이…."




 변주곡처럼. 미묘하게 디테일이 첨가되기도 빠지기도, 바뀌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과거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아이고 할머니, 그 얘기 골백 번은 더 했겠네."

저만치서 걸어 들어오시던 간병사 분이 듣다못해 한마디.


"할머니 구십세살에 말도 이렇게 잘하시고~ 아이고, 백 살 넘게 오래 사셔야겠다 그자? 할무이? 
여기 할머니는 혼자 걸어서 화장실도 다 다니실 수 있고, 식사도 혼자 다 하시고, 대소변 가리고, 말도 잘 하고, 기력도 좋고. 얼마나 좋아.

 아이고 이거봐. 할머니 머리도 새까맣게 길어나오네. 끝에 머리는 흰 데 어째 새로 길어나오는 머리가 새까맣대? 회춘하나봐 할머니, 호호호.

 아니 이 할머니가 머리를 안 자르잖아. 그래도 혼자 관리가 다 돼. 딱 짜매가지고. 목욕시킬 때 힘들다고 머리 자르자고 그렇게 입씨름을 하고 꼬드기고 해도 할머니가 머리를 절대로 안 자른다 고집을 부려. 이게, 지금 머리 하고 있는 비녀가 아들이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준 거래. 사고 나기 전에."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적당히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던 내 입가가 설핏 굳어졌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할까, 갑자기? 막상 담담하고 일상적인 말투로 얘기를 하는 할머니와 간병사 아주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듯 했지만.


 하긴 그랬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어르신들은 모두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게 된다. 간병사들이 목욕이나 환복 등 여러 생활 보조 과정에서 보다 편리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평생 머리 안 자르고 사셨다는 할머니, 머리 자르면 더 늙어보이고 못생겼다고 싫다는 할머니, 아무리 싫다 하시던 분도 강요든 설득이든 결국 1주일을 못 버티고 커트머리로 변신하시곤 했다.

 이전까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할머니는 입원한 지 보름이 넘었어도 가만히 넘겨빗어 비녀로 쪽진 머리를 고수하고 계셨었다. 내가 보지못했을 수많은 과정 끝에 얻은 할머니의 자그마한 승리였을 것이다. 죽은 아들을 기억하겠다는 할머니에게 누군들 짧은 머리를 강요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들 둘이를 먼저 보내고, 막내이 아들이 참 착한디. 그기 우리가 시골에 살다보이 중국인 처자를 며느리로 들뢌는데, 고마 그기 못됐기 들어온기라. 지도 늙을낀데 내 늙어서 똥오줌 못가리믄 그거 똥오줌 치우라칼까봐 여기다 갖다가 나를 넣어놓고. 우리 아들은 참 착한데. 손주들도 그래가 참 참해 …."



어쩌면 뻔하디 뻔한 신파, 전형적인 슬픈 감동 이야기이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었고, 담담히 흘러간 사실들이고, 언제까지나 남겨두고 싶은 기억이었을, 그런 이야기들이 요양병원에는 언제나 떠돌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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