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
대만에서 고작 회사 두 군데 다녀본 것이 다지만, 둘 다 외국계 회사라 대만 로컬 회사와는 또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만인 직원 비율이 가장 높긴 했으니! 우리나라와는 같은 듯 다른 대만 회사 분위기와 문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월급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선 참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느꼈다. 회사에 상하관계가 있긴 하지만 서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냥 친구 같달까. 어쩌면 언어 자체에서 오는 호칭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리/과장/팀장 등의 직급을 부르기보단 이름을 부르는 것을 선호하고, 우리나라의 ㅇㅇ씨/ㅇㅇ님 등의 이름에 붙이는 존칭어가 없다 보니 서로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회사라니! 한국인 부장님이 계셨는데, 부장님과 대화할 땐 '부장님 부장님' 하면 되지만, 다른 대만 직원과 중국어로 이야기할 땐 '김 부장'이라고 부르게 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별개로 그들의 일 처리는 한국인을 속 터지게 만들곤 한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회사를 다녀봤고, 일 못하는 사람 많이 만나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책임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자기 일인데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 담당자는 있지만 책임자는 없는(?) 일이 있기도 하고(본인이 담당은 하고는 있지만 잘못되면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회사에 비상 걸려서 야근하거나 새벽 출근하는 사람을 보면 한국인 밖에 없다. 또 퇴근 시간 직전에 급하게 뭐 좀 처리해 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부탁한 사람은 이미 퇴근해서 자리에 없는 등의 황당한 일도 자주 겪었다. 물론 대만 사람 모두가 이런 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열 군데가 넘는 회사를 다니면서 만난 이런 종류의 사람보다 대만에서 두 군데 다니면서 만난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많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늘 워라밸을 외치는 입장에서 한국인의 일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게 아닐까 했었는데, 대만에 와서야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을 비우고 그러려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편해진다. 그들을 따라 한답시고 한국인과 일하는 중에 칼퇴 한번 했다가 욕 엄청 먹고 그 뒤로 눈치 보며 야근을 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하고 착해서 화를 낼 수가 없다. 같은 팀도 아닌데 눈 마주쳤다고 밀크티를 건네주지를 않나,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책상 위에 이런저런 간식들이 놓여있기도 한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사는 집 월세 비싸다고 월세 싼 집 리스트를 뽑아서 보내주기도 하고, 한국인이라 잘 모를 것 같다며 대만의 유명한 먹거리를 사다 주거나 추천해 주기도 한다. 휴일에 어디로 여행 간다고 하면 기차표는 샀냐, 숙소 예약은 했냐, 거기 가면 여기는 꼭 가봐라, 이건 꼭 먹어봐라 참견도 심하다. 복합기에서 스캔하는 법을 몰라 어버버 하면서 이거 저거 눌러보고 있었더니 근처에 있던 직원이 후다닥 달려와서 뭘 하려고 하는 거냐며 바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점심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으면 맛있는 도시락 집을 안다며 원하면 사러 가는 김에 내 도시락도 사다 준다고 하는 동료도 있었다. 이러니 일 좀 못한다고 투덜거릴지언정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도시락 얘기가 나오니 처음엔 좀 낯설었던 한국과 다른 대만의 직장 문화가 하나 떠오르는데, 사무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게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출근길에 아침을 사 와서 사무실에서 먹으며 근무를 시작하고, 점심엔 도시락을 싸 오거나 주문해서 자기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 덕분에 사무실은 오전엔 아침 냄새가 가득하고, 오후엔 점심 냄새로 가득하다. 처음엔 도대체 왜 사무실에서 밥을 먹는지 불쾌하고 싫었는데, 익숙해지니 편했다. 특히 더운 날이 많은 대만에서 점심에 밖에 나가지 않고 단체 도시락을 주문해서 자리에서 먹고 치우니 그렇게 간편할 수가 없다. 이런 문화 덕에 대만은 도시락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한가 보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바퀴벌레를 목격한 이후로는 날이 아무리 더워도 다시 밖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는 후일담.
직장 이야기를 하자면 또 월급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쉽게도 대만의 월급은 한국에 비해 굉장히 낮은 편이다. 외국인이 대만에 체류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계약서상의 최소 월급이 $47,971(한화 약 190만 원)인데, 우리나라 같았으면 '190만 원? 쉽지!' 할 수도 있지만, 대만에서는 이걸 맞춰주는 회사가 많지 않다. 대만 노동부에서 나온 직무별 평균 월급(2022년 발행)을 살펴봐도(링크로 들어가면 18쪽부터 나와 있다) 팀장급은 되어야 $80,000(한화 약 330만 원) 받을까 말까이고, 고급 인력이 아닌 이상 보통 $30,000(한화 약 120만 원) 전후로 받는다. 한국에서 팀장급 이상으로 받다가 대만에서 그 절반 정도 되는 월급을 받는다고 하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싶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대만에서도 가장 큰 명절인 설과 추석에 나오는 보너스다. 보통 월급의 절반 정도의 금액이 들어온다. 근데 사실 이 돈은 연봉에 포함되는 금액으로, 연봉을 13으로 나눈 금액이 매달 받는 월급이고, 나머지 한 달 치의 월급을 절반으로 나눠 설과 추석에 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차라리 그냥 월급을 더 주지!" 하지만, 그래도 막상 설/추석 보너스를 받을 땐 기분이 매우 좋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웬만하면 한 회사에서 1년은 채우려고 하고, 설과 추석 이후에 이직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라고 쓰고 생존기라 읽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