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정 Nov 29. 2023

10. 대만에서 살아남기

『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

대만에서 살아남기 위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매우 습하고', '상상 이상으로 더운'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의 여름이 '와, 덥다' 라면, 대만의 여름은 '음? 이게? 맞아?'랄까. 내가 느끼고 있는 이것이 정녕 더위가 맞는 건지,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내가 고장 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게 만든다.

6-7월 중에 찍은 유일한 야외사진

대만의 햇빛이 얼마나 강하냐 하면, 습도가 70-80%를 넘나들어도 햇빛만 쨍쨍하면 빨래도 금방 잘 마른다. 시계를 차고 한 30분 정도 땡볕 아래를 걷고 나면 손목이 축축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시계를 빼면 시계를 찼던 곳만 빼고 피부가 탄 걸 확인할 수 있다. 대만 사람들처럼 여름에 긴팔 옷을 입어보려고도 몇 번 시도했었지만, 습도마저 높아서 차라리 그냥 타는 쪽을 선택할 만큼 견디기 힘든 더운 날씨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절대로 양산은 필수다. 나는 대만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수리가 빈 사람이 많은 것이 이 햇빛 때문이라고 99% 확신 중인데, 비록 손목은 지켜주지 못했지만 모자는 아무리 더워도 꿋꿋하게 쓰고 다니면서 정수리는 지켜냈다는 것에 위안 삼고 있다. 선크림을 열심히 발라도 금방 땀과 함께 다 흘러내려서 지워지니, 결국 모자와 양산을 더 잘 챙겨 다닐 수밖에 없다. 대만에서는 외출만 했다 하면 땀이 나오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줄줄 흐른다. 나는 내가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이라고 30년 이상 믿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저 한국이 땀이 나올 만큼 충분히 덥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10월 끝무렵에도 뜨거운 햇빛

물론 대만이 일 년 열두 달 내내 이렇게 더운 것은 아니다. 한 반년 정도만 이렇게 덥고, 나머지는 적당히(?) 덥다. 대만에도 '겨울'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겨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 한겨울에도 10도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고, 최북단에 위치한 산 정도에만 5년에 한 번쯤 눈이 내릴락 말락 할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만의 겨울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우기여서 해가 좀 가려지니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겨울에도 가끔 해가 나오면 더워서 땀이 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겨울이라 치는 1, 2월에 남부 여행을 했을 때는 날이 좋아 거의 반팔을 입고 다녔다.

1-2월 남부 여행 패션

날씨가 이렇다 보니 대만에는 난방시설이 안 되어 있는 집이 대부분이라 겨울엔 실내가 실외보다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금 '대만에 겨울이 어딨냐~' 했지만, 사실 대만에서 보낸 첫겨울에는 전기장판을 끼고 살았었다. 더운 나라이다 보니 바닥이 대리석 같은 매끈한 돌로 된 집도 많은데, 여름엔 시원할지라도 겨울엔 맨발이 닿으면 소름이 쫙쫙 돋고 뼈까지 시린 느낌이 들 정도다. 또 겨울은 여름보다도 더 습해서 벽이든 가구든 옷이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곰팡이 파티가 펼쳐지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어디든 울창한 대만

더운 나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살아있는 것이면 뭐든 큼지막하다. 사람 키만 한 잡초, 울창한 나무,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빽빽한 산, 주먹만 한 달팽이, 손가락만 한 도마뱀붙이 등. 여기까지는 귀엽게 봐줄 만하지만, 다리의 수가 네 개를 넘어가면 참기 힘들다. 왜인지 여행 때는 아무 벌레도 보지 못했었는데, 대만에 살게 되니 무슨 벌레가 그리도 자주 눈에 띄는 건지. 벌레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특히 바퀴벌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정말 평생 살면서 볼 바퀴벌레는 대만에서 다 보고 온 것 같다. 해가 지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거리를 활보하는 녀석들 때문에 웬만하면 밤에는 밖에 나가지 않게 됐다. 낮이라고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밤에 비하면 (살아있는 놈들은) 몇 안 되긴 한다. 하지만 실내라면 밤낮없이 마주칠 수 있다. 회사에서 서랍 열었다가 더듬이 팔랑 거리고 있는 바퀴를 보고 진짜 내적 비명을 얼마나 질러댔는지. 집에서도 두어 번 나온 적이 있는데, 제일 처음 등장했던 놈이 어디서 약을 먹고 온 건지 싱크대 밑에 죽어있었고, (치우는데도 마음의 준비만 세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덕분에 바로 살충제를 준비해 놓을 수 있어서 다음 녀석들을 대비할 수 있었다. 만약 첫판부터 살아있는 큰 놈이었다면 집 버리고 바로 귀국했을지도 모른다. 대만에 바퀴벌레 안전지대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헤이원즈(黑蚊子 hēi‧wén‧zi)라는 까만색 점찍어놓은 것 같은 흡혈 벌레가 있는데, 물리면 모기한테 물린 것보다 훨씬 가렵고 물린 부위는 흡사 벌에 쏘인 것 마냥 퉁퉁 부어오른다(사실 벌에 쏘여본 적은 없다). 한국에서 가져간 버물리도 크게 효과가 없어서 대만 약국에 가서 물린데 보여주고 받은 약을 발랐는데 금방 가라앉아서 신기했다.

크지만 귀여운 달팽이와 도마뱀붙이

구구절절 나도 모르게 한탄하듯 쏟아내게 만든 대만의 기후와 벌레는 대만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이다. 여행으로만 다녔으면 잘 몰랐을지도 모를 것들을 잔뜩 체험했지만, 그래도 대만에서의 생활은 인생의 좋은 경험이었고, 주니어와 함께하는 해외 생활의 괜찮은 첫 시작이었고, 또 멋진 추억도 많이 남기고 와서 후회는 없다. 이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다음 해외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작게 희망해 본다.


이직요정은 당신의 꿈과 도전을 응원합니다. 『이직요정의 대만 생활기』 여기에서 마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9. 대만에서 여행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