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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Dec 03. 2022

12월, 첫눈 내리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몇 년 전,  대관령 목장,  연리지




하루치의 신문을 읽고 나서 침침해진 눈을 감는다. 피로해진 눈을 감을때마다 생의 고뇌가 응집된다.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는 순간마다 응집된 덩어리들은 아슬아슬하게 사선을 넘나든다. 눈을 감으면 체념하고픈 생이다, 눈을 뜨면 생에 대한 애착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철책선, 오늘도 그 경계를 무시로 드나 들며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말들이 사치로 밖에 들리지 않을 줄도 안다. 그런 오해조차도 우아하게 즐겨야하는 이율배반적인 삶은 비극이 아니라 차라리 희극이다. 이런 생각들로 에너지를 한차례 소비하는 내내,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하얀 눈! 나의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 동어의 의미가 전혀 다른 차원의 뜻을 가진 것처럼, 나의 생각이라는 무게도 나를 넘어서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펼쳐질 수는 없는 것일까.


한 해가 또 흘러 가고 있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고 월화수목금 요일만 반복적으로 기억하며 수업을 하고, 일상을 살고 있었다. 탱탱할 것만 같았던 젊은 날의 피부가 어느날 갑자기 한 순간에 폭삭 늙어 있는 현상처럼,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이 딱 그만큼 소스라치게 괴괴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식상한 자문을, 12월에는 하지 말기로 하자. 허울 좋은 말들로 포장 하지도 말 것이며 보이기 위해 치장하던 허영심들이 값싼 낭만으로 전락하더라도 가슴을 치며 울지 않기로 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새벽에 눈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 본다. 눈 내리는 풍경속에서 족히 커피 한잔을 하고픈 마음에 커피를 내리니 그 냄새가 사방으로 공명된다. 아아,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거구나. 부은 편도를 적당하게 자극하는 커피의 뜨거움, 냄새, 적요속 가로등 같은 커피의 진중한 뒷맛! 커피 한잔으로 오감이 모두 살아나니, 생이, 순간 무척 감격스럽다. 이렇게 살 것이다, 이렇게! 무엇을 위해 사는 거창함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을만큼만 노력할 것이며 노력하기 위해 단지 노력하리라. 다른 차원은 없다, 인정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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