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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Jan 16.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키건

독서기록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이다. 석탄상인으로 배달일을 하면서 안락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풍족하지 않지만 나름,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건실한 가장이다. 그가 어느 날, 우연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냥 지나치고 외면하면 사소하고도 작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면 거대한 진실이 들어있는 현실이다. 내가 그였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는 동안, 그는 이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그 용기는 잘 자란 어른이 베풀 수 있는 온정 이상의 것이다. 자칫하면 그의 직업도, 그의 가정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는 아주 작고 가녀린 손을 붙잡고 수면 위로 올라온다. 성장 과정에서 내면적 결핍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미시즈 윌슨이라는 어른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기에 삶을 성찰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렇게 잘 자란 어른이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소설은 그 어떤 구체적 설명 하나 없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꾸린 안락한 가정이 있어도, 인간이 가져야 하는 고독과 지겨움이 설핏설핏 그의 발목을 잡더라도, 살아야 하는 것들은 또 그렇게 살아 나갈 수 밖에 없는 쓸쓸함이 문장 곳곳에 배어 나온다. 그렇지만 생존이 그 목적인 사람들에게는 지겨울 틈도, 사고할 틈도 없다는 것을 펄롱은 명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 걸까?'  Page 93  




책이 주는 울림은 새벽 공기를 가르는 새의 소리처럼 맑다. 너무 맑아서, 요원하기도 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제목도 참 좋다. 읽는 내내 사소한 것들이 훅 스치듯 들어와서 한숨 두숨, 숨을 고르고 읽었다. 소설이라기엔 짧고, 시라고 하기엔 조금 긴 산문시 같은 소설. 내가 무어라고 문장을 붙이는 것조차도 그녀의 소설을 훼손하는 행위 같아서 그만 두련다. 직접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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