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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21. 2023

이제는 독일로 떠나야 할 때

과거를 뒤로 하고 디딘 한 걸음

B2 시험 합격을 위해 마지막 남은 관문, 말하기 시험. 많은 사람들이 독학으로도 말하기 시험에 통과한다. 프리토킹 실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시험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예시 문장들을 반복해서 학습하고, 자주 출제되는 주제와 연관된 어휘를 익히면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충분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일단 ‘말하기’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컸다. ‘영어 울렁증’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독일어 말하기 울렁증’이 있었다. 영어든 독일어든 틀리지 않고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2020년과 2021년은 짧고도 긴 30년 인생에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깜깜한 해였다. 나를 둘러싼 여섯 면이 모두 아주 단단한 돌로 가로막힌, 아주 좁은 방에 갇혀서 나가려고 있는 힘껏 움직이지 않는 돌을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방에서, 내가 갇혀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혼자 할 일들을 찾아냈다.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피아노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독일어 공부를 했다.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벽을 부수고 나갈 그날을 기다리면서.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B2 시험을 준비하던 즈음,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수 없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사건이 터졌다. 승진과 연봉인상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최소 반년 정도는 더 일할 계획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모두 내게 무의미하고 아까운 시간으로 여겨졌다. 돈을 포기하더라도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그곳을 떠났다. 






퇴사 후에 더 열심히 의욕적으로 독일어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나를 덮친 건 심각한 퇴사 후유증이었다. 이미 떠나왔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꿈에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늘어난 시간은 나를 생각의 늪에 빠뜨렸고, 고통을 되새기다 멍해지곤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나에겐 할 일이 있었다. 이제는 부서진 벽의 잔해를 들여다보는 걸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행히 나를 버리지 않은 행운 덕분에 그런 상황에서도 독일어 B2 시험 중 3개 영역에 합격했다. 남은 건 두렵고도 두려운 말하기 시험이었다. 혼자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제출하면 되는 필기시험과 달리, 구술시험은 감독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을 뱉어야 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에서 땀이 났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타인이 나를 비웃을 것 같은 두려움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겪으면서 더 악화되었고, 나의 작아진 마음은 독일어 공부를 비롯한 일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독일어로 말해야만 하는 상황에 억지로 나를 집어넣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다른 학원에서 말하기 시험 대비반을 수강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미 수강신청까지 마친 후였다.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고 남편인 산과 얘기하다 우리는 같은 의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지금 왜 한국에 있어야 하지?”


다음 해 10월에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보다 몇 개월 전에 독일로 떠나는 걸 생각했었다. 입학이 확정되고 나서 확실하게 가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가 앞당겨졌고, 독일어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비싼 수강료를 내고 학원에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학원 수강료와 시험 응시료를 독일에서 쓴다면? 


독일어를 가장 많이 써야만 할 상황은 독일에서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혼자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독일에서 듣고 말하는 거보다 나을 리가 없었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이 공급되었고 전 세계가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독일 대사관은 잠정 중단되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을 얼마 전 다시 재개했다. 


“그냥 독일에 일찍 갈까?”

“그럴까? 그런데 갔는데 대학원 다 떨어지면 어떡해?”

“그럼 그냥 1년 좋은 경험 했다~ 하고 돌아오는 거지 뭐.”


당시 산은 만 30세, 나는 만 29세. 만 30세까지 신청이 가능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각각 받을 수 있었다. 별다른 목적이 없더라도 1년은 독일에 거주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장 빠른 대사관 예약은 약 두 달 후였다. 이전에는 바로 며칠 후 예약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몰린 탓이었다. 12월 말로 비자 신청 예약을 잡고, 바쁘게 사람들을 만났다.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무작정 비자 신청일로부터 3주 후에 비행기 편도 티켓 두 장을 결제했다. 한 달간 지낼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고 서울의 집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2022년 1월 17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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