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백 자판기 Oct 31. 2022

[영화 리뷰] <크루엘라>와 펑크의 시대

크루엘라의 패션과 영국 문화혁명

Day 21's Topic : Movie

영화 <크루엘라>와 영국 문화혁명


기성세대 파괴의 아이콘 <크루엘라>

  영화 <크루엘라>는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의 개>에 나온 악역 <크루엘라>를 재해석하는 영화인 동시에, 1970년대에 유행했던 펑크 문화의 탄생을 조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 크루엘라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도둑질로 생계를 연명한 하류층 인물로 그려지죠. 반대로 남작 부인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패션을 선도하는 상류층 인물입니다. 그런 남작 부인을 <크루엘라>는 존경하는 동시에 증오하고, 마지막엔 파괴하기로 마음먹는데요 이 전쟁의 무기로 사용하는 수단이 "패션"입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하는가?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죠
- 비비안 웨스트우드

  <크루엘라>의 의상 디자이너 제니 비번(Jenny Beavan)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크게 두 디자이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펑크 패션 문화의 선두에 있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Dame Vivienne Westwood)"와 여성스러운 오드 꾸뛰르 패션을 이끈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이죠.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크리스챤 디올


  두 패션 천재들이 추구하는 방식은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디올 브랜드는 상류층을 위한 맞춤옷인 오드 꾸뛰르의 "기준"을 던지는 브랜드였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디올은 여성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패션을 선도했습니다만,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선도하는 펑크 패션은 쓰레기부터 나치 문양과 같은 금지된 상징을 사용하는 등 반항적이고 강렬한 패션을 선도했습니다. 그 결과 펑크 패션은 1970년대 영국 문화 혁명과 함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와 록 밴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죠. 그리고 이 격변의 시대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크루엘라입니다.



고급스러운 포장지를 찢는 방법

  크루엘라는 남작 부인을 무너트리기 위해 그녀의 패션쇼마다 나타나 자신의 강렬한 패션들을 선보입니다. 남작 부인 앞에서 과감하게 "The Future"이라는 문구를 보여준다거나, 남작 부인의 차 위에 올라타 마치 여왕을 떠올리는 복장으로 화려하게 치마를 펼친다거나, 쓰레기차에서 나와 쓰레기로 만들어진 옷을 휘황찬란하게 보여주는 방식들이 그렇죠. 이는 그녀의 천재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방식인 동시에 남작 부인이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있는 가식의 포장지를 찢어버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크루엘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거든요.

"가식 그만 떨고 이제 그만 꺼져."


  이런 모습은 마치 1970년대 펑크 문화가 기성세대에 던지고자 했던 메세지와도 유사합니다.


왜 항상 규정대로 해야 하는가. 질서와 규범이 정말 개인을 책임져주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가.


  그런데 메세지를 잘 보면, 펑크 문화의 본질은 의외로 사회에 대한 반항과 거부가 아닌 다른 쪽에 있습니다. 바로 "존중"이죠. 남작 부인을 망가트리려는 크루엘라가 사실은 남작 부인의 진정한 사랑과 존중을 받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죠.



애증과 존중
펑크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죠.
나는 반항아라는 걸 보여주는 아이콘이요.
제 나이(50~60대) 사람 중에는 그런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핑계였죠
-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반항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그녀가 펑크에 발 담그게 된 건 예술 학교 학생 말콤 맥라랜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그녀는 반항적인 청년 문화에 심취해있던 맥라린에게 깊은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영국 문화 혁명을 함께 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가 취했던 입장은 분명합니다. 과격적이고, 폭력적이고, 날라리이자 딴따라처럼 보이는 이들도 사랑을 하고,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와 낸시

  세상 그 무엇보다 사회를 배척하고 있는 듯한 이들도 사실은 사회에 소속되어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도 목소리가 있고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존재했다는 것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을 통해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크루엘라의 패션

  크루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크루엘라는 사실 에스텔라를 통해 어떻게든 기성세대의 상징인 남작 부인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도 받고 존중도 받고 싶었죠. 하지만 그녀를 죽인 건 역설적이게도 그 남작 부인입니다. 감히 한 젊은 천재가 자신을 뛰어넘으려 했으니까요. 그래서 크루엘라 역시 에스텔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어떻게든 애쓰던 젊은 천재를 죽인 당사자가 바로 사회였으니까요.



'나'로 살아가는 것
당신이 의견을 스스로 형성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어요
그게 예술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에요.
예술은 다른 시간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진실과 비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공통의 인간성이 있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 비비안 웨스트우드

  에스텔라의 죽음 이후 크루엘라는 그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당찬 악녀로 변모합니다. 범규범적이고, 상징적이죠.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뉜 색조차 그녀의 대표 상징 그 자체가 되었을 때, 크루엘라는 이전과 달리 명확하게 자신이 사회에 속해져 있음을 느낍니다. 사회에 속하기 위해 염색으로 머리색을 숨기듯 자신의 색을 속인 에스텔라는 정작 사회로부터 죽임을 당했지만, 사회에 큰 소리를 내기 위해 모든 규범을 깨부수던 크루엘라는 역설적으로 사회가 환호하는 인물이 되었으니까요.

크루엘라의 쓰레기로 만든 드레스

   이 모든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디즈니가 빌런 크루엘라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목소리도, 영화에 70년대 펑크의 시대를 가지고 오게 된 이유도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말하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 없이,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의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사회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reference
유튜버 '요런 시점'의 <크루엘라> 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헤어질 결심>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