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맺고 싶은 욕망과 끝을 맺고 싶지 않은 욕망의 부딪침
완결을 미결로, 미결을 완결로,
끝을 맺고 싶은 욕망과 끝을 맺고 싶지 않은 욕망의 부딪침
스포일러 없는 리뷰
관객들이 마침표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은 허투루 쓰인 컷이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매우 치밀하면서도 정교한 영화입니다. 대사 하나도, 보이는 장면 하나하나에도, 배우가 입은 옷에도, 연기에도 의미 없는 컷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작가 모두가 정교하게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기도, 한편으론 숨이 막힐 만큼 벅차기도 합니다. 또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인물들의 형이상학적인 감정만 가득한 매캐한 공기 같은 영화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상당히 이성적으로 해석되는 영화였습니다. 감독과 연출이 의도한 바를 매 순간마다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영화를 마음이 아닌 머리로 따라가게 되더군요. 박해일을 치밀한 형사로, 탕웨이를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린 이유가 저런 이유였구나. 푸른 벽지와 붉은 옷의 대조는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을 강조할 때 나오는구나. 해석할 수 없는 두 언어의 부딪침이 둘의 엇갈림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는구나 등. 한 컷이라도 놓칠까 마침표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찍으며 영화를 보다 보니 두 인물의 애절한 감정이 이리저리 엇갈리는 것을 알면서도 인물에 대한 공감은 조금 거리를 둔 상태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헤어질 이유가 너무 많아 벅찼던 영화
저는 이성의 속도만큼 감정이 빠르게 따라가기 어려운 영화이다 보니 이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몇 번이고 보면서 해석할게 많은 영화이기도 하니,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는 영화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영화 해석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반드시 보라고 권장해드리고 싶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곱씹어서 볼 게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영화 해석보다는 '재미' 그 자체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강하게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재미가 분명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수사물이라고 하기엔 수사는 허술하게 진행되고, 로맨스 영화라고 하기엔 두 인물이 끝없이 거리를 두면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보니 감정이 강하게 폭발되는 간질거림을 주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한 번 보시는 게 어때요?'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든 공예품과 같은 정교한 영화이고, 이런 영화는 쉽게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 박찬욱 감독님이 이 정도로 누구나 봐도 무리 없을 법한 영화를 만드시는 경우는 처음이시기도 하구요.
그래서 기회가 되신다면 꼭 극장에서 한 번 보시면서 박찬욱 감독님이 만드신 또 다른 명작 영화를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총점
한 줄 평 : 산이 바다처럼 무너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