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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street Jul 21. 2022

이건 좀 아니다 싶어 퇴사를





나는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해내는 적응형 인간이었다. 


미국에 살고 있을 땐, 한국에는 살아본 적 있었냐 싶을 정도로 미국식 사고방식에 흠뻑 젖어있었고

한국에 살고 있을 땐, 미국에 살아본 적은 있었냐 싶을 정도로 한국식 사고방식에 흠뻑 젖어있었다.


사업을 할 때엔, 너는 직장은 못 다닐 사람이야 라는 평가를 듣고 살아왔고,

직장을 다닐 땐, 너는 완전한 직장인이야 라는 평가를 듣고 살아왔다.



군대에 있을 땐, 군 생활이 괜찮았어서 군인을 꿈꿨고, 

학교에 있을 땐, 학업이 괜찮았어서 교수를 꿈꿨다.

직장에 있을 땐, 직장생활이 괜찮았어서 이사를 꿈꿨다.

식물을 키울 땐, 식물이 좋아서 식물을 키워 판매하는 사업을 꿈꿨고,

강아지를 키울 땐, 강아지가 좋아서 강아지 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꿈꿨다.

연애를 할 땐, 연애 생활이 좋아서 결혼을 꿈꿨고,

일을 쉬며 프로그래밍 공부를 우연찮게 시작하게 되어 지금은 디벨로퍼를 꿈꾸게 되었다.


나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며 여러가지 모습으로 적응해내는 적응형 인간이었다. 



한국의 어느 중소 투자회사의 전략기획팀장을 맡고 직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신규 사업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책임져야할 어느 기회가 주어졌었다. 마치 내 사업처럼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신규 사업 본사 근무자의 인원수가 턱없이 적었고, 채용을 하더라도 중소기업의 업무량과 임금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금방 퇴사하는 근무자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모회사의 전략기획팀장이었고

나는 자회사의 전략기획팀장이었고, 기획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마케팅팀장이었고, 마케팅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경영팀장이었고, 경영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전산팀장이었고, 전산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인테리어팀장이었고, 인테리어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기술팀장이었고, 기술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총무팀장이었고, 총무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경영지원팀장이었고, 경영지원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영업팀장이었고, 영업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구매팀장이었고, 구매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회계팀장이었고, 회계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인사팀장이었고, 인사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법무팀장이었고, 법무 실무자였다.

자는 자회사의 무역팀장이었고, 무역 실무자였다.

나는 자회사의 미국법인장이었고, 미국지사 책임자였다.


그 모든 일도 적응해나가며 어떻게든 수행하며 일에 파묻혀 지내던 시간들이 흘러 지나갔다. 일은 내 전부였고, 나는 나를 서술하는 것에 직장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득 직원 한명이 퇴사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잡았다.


"일도 좋지만, 삶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팀장님 삶은 좀 안녕하십니까? 그럴리가 없죠. 이렇게 일하면 무슨 삶이 있겠어요." 


이 말을 들은 직후에 퇴사를 결심했고, 다음날 퇴사를 위한 인수인계서를 장장 워드 220 페이지 어치 작성에 돌입하고 퇴사를 했다. 


하루에 25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아가며 일을 처리했었다. 당시엔 내가 참 중요하고 책임 있는 자리였구나. 바빠도 바쁜게 당연하지. 주말이 없어도 주말이 없는게 당연하지. 밤에도 밤이 없는게 당연하지. 사회적 책임은 나에게 피로함도 주었지만, 만족감도 주었던 게 사실이었다.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라고 물어오면 웃으며 "덕분에 일이 많습니다." "바쁜게 좋은거죠. 하하하"와 같은 레파토리가 즐겁기도 했었다.


빠짐없이 퇴사 인사를 마쳤다. 각 부서에 내 자리를 대신 할 새로 들어온 인원에게, 거래처들에게, 기존 직원들에게.   


다음날,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다간, 전화대기가 3개 이상 쌓여 마냥 미웠던 전화기. 통화목록은 1분 간격으로 빼곡 채워져있었던 전화기가 거짓말 같이 울리지 않았다. 처리해야할 업무를 빼곡 적어놓았던 달력이 거짓말 같이 비기 시작했다. 


회사로만 채워졌던 내 일과가 텅 비어버렸다.


후련함 반, 허전함 반.


텅 빈 내 시간표. 


하지만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간 내 삶을 굉장히 다채롭게 살아왔던 사람이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참 다채로웠고 취미는 구체적이었고 다양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 많았다. 이제는 그 시간표를 하나하나 나를 위해 채워나가야 한다. 


믿음과는 조금 다르게, 일과를 채워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던 식물 가꾸기를 못 했었다. 키우던 식물들은 대부분 병충해를 입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던 강아지와의 산책이 모자랐다. 강아지의 기력이 예전같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던 음악감상을 못했다. 플레이리스트는 3년전부터 한 곡도 추가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던 독서를 못했다. 새로운  책, 트렌드가 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없어 그 좋아하던 가구배치 바꾸기를 못했다. 내 삶과 집이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없어 그 싫어하던 운동을 못했다. 이제는 안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 그..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친구와의 약속.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식물들은 잎사귀 하나하나 닦아냈고, 물을 정성껏 주기 시작했다. (식물에게 물을 정성껏 주나 대충 주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우선 간략하게 말하겠다. 대충 물을 주면 1시간이면 끝날 것을 정성껏 주면 5시간 정도 걸린다.)


토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어 주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강아지들이 우글우글거리는 대형 쇼핑몰의 옥상정원에서 맘껏 놀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맛있는 간식은 줄 수 없었다. 강아지는 사료만 먹는게 가장 건강하다고 한다. 


플레이리스트 수정은 쉽지 않았다. 간만에 듣던 차라 트렌드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음악은 클래식이나, 30-70 올드 재즈 정도를 들었었더랬다.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거. 첼로를 구매했다. 그리고 레슨을 받으며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독서.. 독서는 참으로 지독하다. 그간 책 좀 안 읽었다고, 이렇게나 책이 눈에 잘 안들어오게 될 줄이야.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무릇 책을 읽었다면 나의 관점과 의식이 확장되어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 세계관의 확장, 변화, 돌변을 설레며 사랑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읽었던 책을 수십번을 반복해 읽던 내가 책이 눈에 읽히지 않았다. 어우,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리하여 소설을 읽었다. 가슴이 먹먹한 공감, 삶이 명쾌해지는 쾌감, 굴러가는 돌을 보고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던가. 소설 속 주인공과 나는 유사점이 없더래도 그 작자들에게서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구배치... 이것 참 묘한 것이다. 나는 가구를 재배치하고 가장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방구석 생활의 천재로서 이미 완벽하다 싶었던 가구를 또 재배치하여 더 완벽을 찾아낸다. 맥주를 한잔하고 밤 12시가 넘으면, 방을 전체적으로 돌린다(?). 침대와 책상의 위치가 바뀌고 책장의 위치를 바꾼다. 서랍장을 옮긴다. 실험적인 배치, 전통적인 배치를 번갈아 매주 주말이면 배치가 바뀐다. 가구배치를 바꿀 땐 행복을 느끼고 끝나면 내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내 방을 사랑하게 되고, 이러한 행동들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운동. 내 인생에 운동은 있을 수 없었다. 존경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재였으리라. 와 같은 엉망진창의 변명으로 나의 운동혐오증을 옹호해왔다. 개인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운동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보기 불편했던 것일까. 배드민턴과 탁구를 시작했다. 나는 이제 건강하게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볼까 한다.


친구와 만나는 것.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하고, 해외를 나돌아다닌 탓에 친구라 할만한 사람이 5명 미만이다. 그것만 탓하기엔 너무 구차하고, 사실 남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 아니다. 이러한 못난 성향과 환경 탓에 퇴사 후 단 두번의 만남으로 친구에게 안부인사를 모두 돌렸다. 


애인.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랑이다. 어찌나 관심이 없었는지. 한번은 이렇게 물어봤다. 신부가 남자니? 신랑이 남자니? 부가 父부가 아니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답변을 받기 위해 많이 혼나기도 했다. 이제는 착실히 준비를 도와주고 있다. 




이렇듯 내 시간표를 차차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나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내 인생이 사랑스럽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팅커벨에게 이끌리듯 퇴사했었다. 이유야 천천히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모르겠고, 맘이 붕떠서 이젠 퇴사할 때가 온 것 같다하며. 



(전)회사 동료들에게서 연락이 와 퇴사 소감을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아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니 근데 형, 잘 하다가 도대체 왜 퇴사한거야?"


"응,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퇴사했지 뭐야."


응 이건 좀 아니다 싶어 퇴사한 것이 아니라, 퇴사하고 보니 그건 좀 아니었던 것이었다. 




행복한 퇴사자, 내 인생은 여태까지도 파란만장했지만, 파란만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나의 파란만장한 라이프를 자세히 까볼 수 있도록 하자.

중간중간엔 헉스러운 나의 치부인 과거도 볼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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