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시원하게 마사지받고 오세요~
나는 스트레스를 그다지 받지 않는 사람이다. 혹여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마사지라도 받고 나면 대부분 ‘이런 일도 다 있네’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생긴 불편한 감정을 지워버리곤 한다. 스트레스가 내 인생을 옥죄는 건 무엇보다 싫으니까 빨리 털어내는 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상책이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이라 오래 불편한 감정들을 데리고 사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해갈할 출구가 작다 보니, 내가 보게 되는 남편의 모습은 휴대폰 게임이나 쇼핑이 스트레스 해소법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진다. 그리고 나는 깨어있는(?) 아내로서 즐기고 나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리는 매체에 남편이 소중한 인생을 소진시켜버리기보다는 조금이나마 생산적인 여가활동에 시간을 썼으면 이라고 언제나 바란다.
물론 게임이나 쇼핑이 당장의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나 역시도 경험했지만 굉장히 즉각적이고 현실회피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가급적이면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남편도 이것을 깨닫길 바라는데 쉽게 깨달을 수 없다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 더 빠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떤 미션을 제안해야 앞으로도 남편이 계속 작은 변화들에 만족감을 느낄까 고민했다.
고심한 끝에 제안한 두 번째 미션!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오세요!
나는 일자목 증상이 있어서 안 좋은 자세로 생활하면 어깨 결림이 종종 온다. 그리고 이것을 푸는데 마사지보다 효과가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내가 마사지를 좋아하게 된 건 그래서였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개운하게 하고 생활에 활기를 찾게 해 주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남편도 언제나 구부정한 자세로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니 신체로 느끼는 불편함이 아마 나랑 비슷할 거다. 그래서 가끔씩은 마사지를 받았으면 했는데 지난 10년 동안 아무리 권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나랑 약속했으니까, 내가 제안하는 건 무조건 실행해 보기로 했으니까 흔쾌히 수락을 한 편이다. 퇴근을 일찍 하고 온 남편에게 마사지 예약을 잡아주겠다니까 가보겠다고 한다. 나의 계획대로 남편이 움직이고 있는 게 짜릿하다. 타인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역시 채찍보다는 당근이, 좋은 말 한마디가 더 효과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전화 지시는 성공했다. 내가 집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화로 남편에게 이 미션을 제안했고, 남편의 미세한 표정변화를 초단위로 읽을 순 없었지만 남편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마음속에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좋다는 신뢰감이 포인트처럼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왕이면 60분 보다 90분 코스로 받는 게 더 개운할 거라는 나의 조언에 남편은 오늘은 60분 코스로 받고 올게 라더니 마사지샵에 도착해서는 그래도 마음을 바꿨나 보더라. 나를 만나자 남편은 90분 코스로 마사지를 받고 왔는데 어깨 부근 근육이 심하게 뭉쳐있었더라고 했다. 마사지를 조금 세게 받았는데 그래도 덕분에 개운해지고 몸도 좀 가벼워짐을 느꼈다고 했다. 당연하지! 무려 10년 치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 하는데 아마 오늘 마사지사분께서도 힘 많이 드셨을 걸? 오늘도 내 말 듣길 잘했지?
어찌 됐든 남편은 오늘도 내가 계획한 힐링코스에 탑승했고 그 후기는 예상했던 대로 만족이었다. 남편은 오랜 시간 동안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작은 일들로 인해서 앞으로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열심히 챙기고 누렸으면 좋겠다.
남편이 경험 후 괜찮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남편을 위해 그다음 미션으로는 또 무엇을 제안할지 고민하며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