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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28. 2019

선생님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

썩거나 썩지 않았던 날들




아무래도 그녀는 선생님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누군가에게 특별하지 않은 선생님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과목 또는 직책으로 불렸는데 예를 들면 그런 사람들은 경제, 확통, 체육 또는 담임, 학주 같은 단어들로 불렸다. 단 한 글자의 존경심도 아깝다는 듯 뒤에 '쌤'이라는 글자조차 붙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실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나만의 친분이나 애정도와는 관계없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열아홉 살이던 문과반의 나와 K, 이과반의 J는 그녀에게 일주일에 몇 번 영어를 배웠다. 우리 셋은 학교를 마치면 능숙하게 옆 학교를 지나, 서로의 옷차림을 지적하며 깔깔대다가 육교를 내려와 대로변에서 지나가는 택시들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열아홉 살들에게 택시를 타고 주기적으로 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우리 학교에서 가까웠지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각자 천 원씩 모아 삼천 원을 내고 택시를 타게 됐다. 보통 걸어서 수업에 오는 도보파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항상 택시파인 우리 셋을 걱정했다.




사실 그녀는 좀 무서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공부를 게을리할 때마다 “이 썩을 것들!!” 하고 혼났다. 글자로만 보면 전혀 무섭지 않지만 썩음을 예고당하는 건 열아홉 살인 우리에겐 가장 큰 형벌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썩지 않고 오래오래 보존되는 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녀와 약속한 숙제를 다 못했거나, 시험 점수가 별로거나, 택시에서부터 꼭 쥐고 있던 벼락치기 단어 종이를 아파트 단지 앞 흙탕물 웅덩이에 빠뜨리는 등의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날, 우리는 어김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떡해. 우리 오늘 썩는 거 아냐?”


그렇게 우리는 자주 썩거나 썩을 위기를 넘겨왔다. 그럼에도 그녀가 무섭기만 하지 않았던 것은,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한 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도보파 학생들은 집에 들를 시간이 있었겠지만 택시파인 우리들은 집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 근처 분식집에서 먹고 가는 날도 있었지만 밥을 못 먹고 수업에 가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평소에 요리를 잘 안 한다는 그녀는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맛있는 한 끼를 내주었다. 사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기농 재료로만 식사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배우러 와서 밥을 얻어먹을 때마다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마음은 잠시 뒤로 한 채 그녀의 정성이 한 톨도 남지 않도록 입을 크게 벌리곤 했다.




밥을 먹지 않는 날은 차를 마셨다. 오늘이 썩는 날이어도 썩지 않는 날이어도 따뜻한 차 한 잔은 허락되었다. 문장의 시제, 빈출 단어, 오답노트 같은 것도 중요했지만 오늘은 누가 무슨 차를 마실 것인지도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이 좋았다. 택시를 잘 탔냐는, 배고프지 않냐는, 밖에 날씨 춥지 않냐는 그녀의 사소한 염려들이 좋아서 열심히 공부했다. 웬만해선 썩지 않을 것 같은 날엔 가끔 개드립을 쳤다. 그녀가 끓여준 따뜻한 로즈힙 티를 마시는 문과반의 K에게 도대체 장미엉덩이차는 무슨 맛이냐고 속삭였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컸는지 우리는 다 같이 장미엉덩이 맛을 상상하며 깔깔대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장미엉덩이라는 뚱딴지같은 말에 감명받아 재치가 넘친다며 새끼작가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그녀는 언젠가 작가가 되면 나를 새끼작가로 써주겠다고 했다. 눈이 튀어나와서 개구리가 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긴 별명이었다. 그래서 새끼작가라는 말이 맘에 들었지만 내가 작가가 될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금세 잊어버렸다. 나는 곧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곧 대학생이 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우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이 오래 흐른 것뿐인데 멀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얼마 전,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다는 말에 10년 전에 장미엉덩이차를 마시던 문과반의 K는 그녀에게 선물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잊고 있던 별명이 떠올랐다. 조금 고민하다 그녀가 번호를 바꾸지 않았길 바라며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도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1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녀가 나에게 기대하는 바 정도였다. 10년 전에 그녀는 내가 오답노트를 꼬박꼬박 쓰고 단어도 빠짐없이 외워서 영어 시험을 잘 보기를 바랐다. 지금의 기대는 전혀 다른 쪽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너 좋은 소식 있지! 결혼하지! 맞지!" 하고 웃었다. 나는 무슨 결혼은 혼자 하냐며 깔깔거린 후 결혼은 아니지만 책이 나왔다는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은 다음 주 월요일이었지만 실제로 만난 날은 이번 주 목요일이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그녀가 근무하는 학원 앞이었지만 실제로 만난 곳은 성당 앞이었다. 수많은 고민 속에 변경된 날짜와 장소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직접 만든 책을 들고 그녀를 만나러 갔고, 그녀는 시골에서 손수 재배했다는 레드키위를 가져오겠다 했다. 약속 당일, 그녀는 약속 장소로 오는 방법을 아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서른 살에 아기 취급을 받게 된 나는 조금 의아해하다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나는 부모님이나 어른의 가이드 없이는 새로운 곳에 가기 어려운, 택시 타는 것에 긴장하는 열아홉 살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막 대학생이 되고 발병한 우리 아빠의 지병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고, 아빠가 퇴직한 후 엄마가 일을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있었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 그녀가 말하는 성당으로 가는데 길을 헤맸다. 5분마다 전화가 왔다. "어디니?" "오고 있니?" 나를 여전히 열아홉 살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자꾸 웃지 말고 길 설명을 잘 들으라며 여러 번 반복해서 길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성당 앞에서 그녀를 만났고, 만나자마자 그녀는 빵빵한 쇼핑백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하나는 언니 꺼야."

"..네? 우리 언니요?"

(tmi : 그녀는 우리 언니를 가르친 적은 없다..)

"그래. 너 언니네 자주 가는 거 같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각자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는 서로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러다 그녀는 자기가 가져온 쇼핑백에 시선이 갈 때마다 아빠한테 꼭 갖다주라고 강조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뭉클한 일이다. 직접 재배한 키위를 나와, 언니, 아빠의 몫까지 챙겨주다니! 고작 책팔커 단 한 권만 챙겨 온 나는 좀 미안해져서, 대화 도중 보조배터리가 필요하다는 그녀에게 내가 쓰고 있던 배터리를 즉석으로 선물했다. 비록 우리 회사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있긴 하지만 10,000mAh라는 핵심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동안 취미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는 나에게 그녀는 조언해줄 말이 많다고 했다.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조금 복잡해 보였다. 우리가 차를 마신 카페는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서른 살의 귀갓길까지 고민해주는 그녀의 마음씨에 길치로서 참 든든했다. 버스정류장에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이 써진 버스가 정차하자 우리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타기로 한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나를 두고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거 신정네거리역 가요?!!!"

가긴 가는데 돌아간다는 기사님의 말에 그녀는 내가 갑자기 그 버스에 뛰어들기라도 할까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쥐고 말한다.


"야. 절대 타지마. 돌아간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다시 열아홉 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지막 귀갓길까지 책임져 준 그녀 덕분에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녀가 일러준 대로 키위가 무르지 않도록 포장을 풀어 조금씩 떼어놓고 냉장고에 넣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가 생전 안 하던 행동을 한다. 나한테 레드키위를 깎아준다. 너무 맛있으니 먹어보라는 것이다. 밥 차리기 귀찮아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점심에도 깎아 먹고 저녁에도 깎아 먹는다. 그녀의 진심이 전해진 것 같다.


예쁜 포장. (한 묶음 더 있는 게 함정)


열심히 단어를 외우다 보면 시험 점수가 오르던 열아홉 살과는 달리 스무 살 이후의 세상은 인생이란 건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얄밉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소중한 인연이나 진심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는 만큼 한결같이 각자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만나면 열아홉 살처럼 대해주는 그녀가 열아홉 살 때만큼 좋아서 자주 만날 것 같다. 그나저나 다음에 그녀를 만나면 돈이 되는 글보다는 단 한 명에게라도 기억되는 글을 쓰겠다고 으스대며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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