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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Nov 09. 2019

소설가 혹은 습작생


소설가의 수업을 듣게 된 이후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요즘은 인스타로 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나는 박상영의 <재희>를 읽고 있었는데 그의 인스타를 보다가 송지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됐고 그의 추천사에 홀려 책을 샀다가 결국 송지현이라는 사람을 선팔했다. 소설가의 피드를 남몰래 엿볼 때 드는 마음은 대부분 질투다. 도대체 평범한 직장인인 주제에 왜 소설가를 질투하는지 모르겠지만 동해에 산다는 그녀는 거주지부터 남다른 것이 참 질투하기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스타를 일방적으로 팔로우한 대가로 알게 된 정보로 나는 홀린 듯 북토크와 소설 수업을 신청했다. 소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질투와 사랑을 실컷 받고 있는 셈이었다. 북토크는 10월이었고 소설 수업 개강은 11월이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주였다. 북토크 다음 날이 소설 수업 개강이라니. 누가 봐도 열성팬 같은 내 모습에 식은땀이 났다. 소설가를 동경하고 질투하지만 이틀 연속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독자를 보는 소설가의 마음은 어떨까.

소설가의 마음이 뜨악스러워지지 않도록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북토크에 갔다. 옷은 무난했는데 관종력은 무난하지 못해서 싸인을 받으며 사실 내일 수업도 간다고 말해버렸다. 소설가는 약간 놀라며 생면부지의 독자인 나에게 내일 또 보자며 미래를 약속하는 내용의 싸인을 해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 수업이 별 거 아닐 줄 알았다. 그렇지만 기대는 했다. 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빵을 만들고 꽃꽂이를 하는 것처럼 배워서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이 한컴타자연습처럼 연습하다 보면 실력이 쑥쑥 늘고 곧 800타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 세상은 소설가로 가득 차고도 남았을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바보처럼 첫 수업 날 깨달았다. 수업 내용을 쏙쏙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오산이었다. 수업을 이해하는 것과 그걸 적용해서 소설 속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에이포 3장 분량의 인물 노트를 쓴다는 소설가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수강생들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단편소설은 몇 편 써봤다고 했다. 살면서 소설이라고는 써본 적도 없고, 소설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주변에 전혀 없는 나는 이때까지 살아온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합평 순서를 정하며 소설가는 12월에겐 ‘우리’에게 큰 이벤트가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12월엔 역시 크리스마스지. 소설가라 그런지 낭만이 있어.

12월의 큰 이벤트는 신춘문예였다. 신춘문예에 관심 있는 ‘우리’들이 순서를 정하는 동안 나는 교실 속의 ‘우리’들이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고 있었다. 속상해하는 사이 내 순서는 12월 언저리께로 정해졌다. 수업 첫날 배운 것은 소설은 배워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한 가지였다. 두 번째 수업을 가기까지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끊임없이 수업을 취소했다가 취소하는 걸 취소했다가 망원역에 가는 길을 외웠다가 잊어버렸다가를 반복했다.   

북토크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고칠 때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운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소설가스러워서 또다시 그녀를 부러워했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면서 울지만 소설가도 습작생도 아닌 나는 소설 수업이 가기 싫어서 울고 싶은 학생일 뿐이었다. 13시 29분에는 오늘 취소하면 수강료를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는지 계산했고 15시에는 회사에서 망원역까지 가는 길을 다시 공부했고 16시 43분쯤엔 아무래도 몸이 아파서 집에 가서 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18시엔 돌연 망원역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어쩌다 보니 18시부터 19시 30분의 수업을 기다리는 모범생처럼 됐다. 일주일 전 소설가의 수업을 들은 후부터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소설가인 척하는 버릇이다. 별 건 아니고 언젠가 소설 속에 들어갈 만한 문장을 몰래 써보는 것이다. 주말엔 모처럼 안양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여기가 어디쯤인지 곁눈질하면서 떠오르는 문장들을 메모했다. 소설가인 척 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제 두 번째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했다. 떨어진 코트 단추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다시 그 코트를 입는 계절을 맞이할 만큼 행동이 굼뜬 사람과 밤의 거리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경찰차처럼 시선을 끄는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웬만하면 자신을 믿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믿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너무 가기 싫어서 울고 싶었던 두 번째 수업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나는 첫날 자기소개를 할 때 소설가가 나를 보며 한 말을 떠올렸다.

“어제도 봤어요!”

언젠가 어제 봤던 사람이 수업에 안 오면 소설가가 속상해할 것 같다는 핑계로 나는 수업을 취소하지 않았다. 소설가도 습작생도 아닌 나는 그냥 소설가와 습작생을 계속 엿보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소설 수업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는 소설은 배워서 쓰는 게 아니라고, 그렇지만 소설가인 척하는 재밌는 버릇이 생겼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수업은 6번 남았다. 다음 주 금요일이 되면 내 마음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제 날 봤다고 말해준 소설가의 얼굴을 생각하면 수업에 빠질 순 없을 것 같다. 목표는 소설 쓰기가 아니라 개근이 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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