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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Nov 30. 2020

나, 내 삶의 편집자

친구가 돈가스를 먹으며 추천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샀다. 서울에서 영풍문고를  군데나 돌았는데   모두 재고 없음이어서  사고 돌아가나 보다 싶었다. 헌데 당일치기로 내려간 경주에서 황리단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책방에서  있었다. 책을 약봉지처럼 디자인된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주셨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읽는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1  회를 읽어야 하는지, 취침 전에 혹은 후에 읽어야 하는지,  시간마다 읽어야 하는지 처방전 칸은  채워주셔서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약봉지에서 책을 꺼내어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두꺼웠다. 뒤표지에 쓰인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슬아는 기본적으로 시트콤 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물론 그녀의 인생에는 신파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스릴러도 있고 몇 백만 관객을 동원할 감동실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 번역하여 전달하는가에 따라 그 장르는 조금씩 달라진다.


같은 경험도 그 경험을 내가 어떻게 편집하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다큐가 될 수도, 드라마가 될 수도, 시트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데, 참 공감이 갔다.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인생극장으로 풀어내느냐 굳세어라 금순이로 풀어내느냐 혹은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풀어내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내가 한창 시트콤 <프렌즈>에 다시 빠져들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프렌즈>는 20-30대 등장인물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연애에 실패하고, 취직에 실패하고, 인간관계로 갈등을 겪는 힘든 순간들을 유쾌하게 풀어내서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그 점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정말 간절히 원했던 회사와의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 레이첼이 랄프로렌과의 면접을 아주 제대로 말아먹은 에피소드를 보면서  속상한 감정을 조금은 위로받을  있었다.


내가 내 삶의 톤 앤 매너를 정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이슬아처럼 유쾌한 시트콤으로 편집하고 싶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나는 실수를 하거나 실패한 순간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곱씹으면서 신파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패의 경험도, 실수도, 유쾌하게 겪어내고 유쾌하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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