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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Mar 11. 2022

기차역 냄비 우동

간혹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아니면 내 상상이 만들어 낸 환상인지 헷갈리는 기억들이 있다. 


겨울, 강릉 기차역 안인지 앞인지 모를 작은 우동 가게. 큰 유리창을 바라보도록 놓인 좁고 긴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고, 그 뒤로 두세명 정도가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다. 아빠와 나는 창가 테이블에 유리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있다. 강릉을 떠나는 길인지, 아님 강릉에 방금 도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피곤하고 춥고 허기지다. 창 밖으로는 두꺼운 점퍼와 모자, 장갑으로 몸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작은 양은 냄비가 내 앞에 놓인다.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우동이 들어있다. 한 젓가락 집어 국물과 함께 입에 넣으니 뜨겁고, 얼큰하고, 적당히 짭조름하고, 적당히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몸이 따뜻해진다.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유리창 안을 힐끔힐끔 본다. 그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닿을까 호로록호로록 더욱 맛있게 먹어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창 저 편의 사람들에게 우동이 맛있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아빠와 둘이 떠난 초등학교 졸업 기념 강원도 기차 여행. 그 여행의 디테일한 기억은 모두 희미해졌지만 강릉 기차역에서 먹었던 냄비 우동의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따금 그 맛이 그리워 재현하려고 해 봤지만 할 수 없었다. 똑같이 생긴 양은 냄비에 끓이면 비슷한 맛이 날까 싶어 양은 냄비를 사서 끓여도 보고, 맛있다는 냄비 우동 집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심지어 강릉 기차역을 다시 찾아 기억 속 우동 집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식당에서 냄비 우동을 시켜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맛을 찾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우동을 먹을 때면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 그때 내가 느꼈던 그 뜨끈하고 깊고 얼큰하고 달콤 짭조름한 우동 맛이 실제로 내가 먹은 우동의 맛인지 아빠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만들어낸 상상 속 맛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지만, 살면서 그런 우동 한 그릇 다시 먹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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