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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Aug 07. 2023

32개월 수면교육 후기: 이게 되네

테오 나이 32개월에 우리는 뒤늦은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면교육 열흘 째인 오늘, 테오는 본인의 방에서 조용히 혼자 잠을 청하고 있고, 나는 내 방에서 블로그를 쓰고 있다. 이런 날이 오다니.

방에 혼자 누워서 조용히 가족사진을 만지작 거리는 테오

32개월, 대체 왜 이제 와서?

얼마 후면 3살인데 이제 와서 웬 수면교육? 수면교육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닐까? 괜히 아이에게 불필요한 상처만 주고 부작용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 사실 나는 이번 수면교육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강하게 원하기에 한 번 시도나 해 보고 안되면 그만두자는 마음이었다.


이번이 테오의 수면교육 첫 시도는 아니다. 그 역사를 보자면,

테오가 5개월이 되었을 때 처음 시도했다가 다음날 테오 목이 완전히 쉬고 눈 맞춤을 거부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하루 만에 바로 중단

9개월 때쯤 다시 시도를 해서 힘들게 성공을 했지만 2달 후 수면퇴행으로 원상복구

돌이 지나고 재수면교육을 시도했지만 이틀 째인가, 한참 울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더니 어둠 속에서 침대 난간을 붙잡고 30분 동안 가만히 서있는 모습에 또 겁이 나서 포기

그 이후로 나는 수면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아예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잠들 때 아이를 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테오는 매일 밤 우리의 품에서 잠이 들어왔다. 테오 방이 따로 있는 분리수면이긴 하지만 침대에 함께 누워서 토닥여주고 노래도 불러주다가 잠이 들면 살금살금 빠져나온다. 그러다 밤중에 깨서 울면 다시 들어가서 옆에 눕고. 그러다 보면 테오 옆에서 나도 어느새 잠이 들어버려 아침까지 테오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분리수면과 Co-sleep의 중간쯤.


나는 이 방식이 나름 좋았다. 테오 옆에 누워 같이 잠이 들고 깨는 것은 매우 큰 행복이다. 그리고 테오는 잠들기 전 말이 유난히 많아지는데 침대에 같이 누워서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면교육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한 데에는 곧 있으면 둘째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수면교육 전에는 테오를 재우는 데에 꼬박 3시간이 소요되었다 (목욕> 양치> 책 보기> 잠들기). 테오가 더 어렸을 때에는 같이 누우면 30분 안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크면서 잠자기를 거부하고 요구사항이 많아지니 그 시간이 길어졌고, 최근에는 목욕과 양치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면 잠들기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게다가 처음엔 나나 남편 아무나 들어가서 재우면 됐었는데 최근 몇 달 동안은 꼭 엄마만을 고집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내가 지금처럼 매일 밤 3시간가량을 테오를 재우는 데에 투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테오가 혼자 잠들어주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면교육 방법: 의자요법

이번에 우리는 전처럼 읽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자체적인 수면교육을 시도하기보다 제대로 된 수면컨설팅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Live Love Sleep이라는 수면컨설팅 서비스를 추천받았는데, 컨설턴트와 1차로 상담을 하고 상세한 설문지를 작성해서 보내니 우리의 상황에 맞춤화된 3주짜리 수면교육 플랜이 나왔다.


우리가 제안받은 플랜의 큰 틀은 흔히 의자요법(Chair Method)이라 알려진 수면교육 방법이다. 처음엔 침대 옆에 앉아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날이 거듭될수록 앉아있는 위치를 방문 쪽으로 조금씩 옮겨서 최종적으로는 방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플랜을 실행할 때의 핵심은 아이에게 3가지 수면 규칙을 알려주고 그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1. 잠잘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있기로 한다.

2. 침대에 누워있을 땐 조용히 누워있기로 한다. 

3. 시계가 일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줄 때까지 (시계의 불빛이 초록이 되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기로 한다.

*컨설턴트의 추천으로 기상 시간이 되면 초록 불빛이 나오는 알람시계를 구비했다


이 3가지 규칙을 지키면 아이가 잠이 들 때까지 곁에서 기다리고 지켜봐 주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짧은 시간 동안 (1분, 2분, 3분으로 시간을 늘려가며) 방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다. 나는 이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좋게 포장하지만 결국은 아이를 협박하는 거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중한 강요랄까. 하지만 돌 전 아기들의 수면교육처럼 잠이 들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만들고 서로 소통한다는 점은 좋았다.


첫날부터 보인 희망적인 변화

플랜의 효과는 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사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다른 건 몰라도 수면에 있어서 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는 테오라 난 매우 격렬한 저항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테오는 첫날부터 새로운 규칙을 생각보다 잘 따라주었다.


밤잠: 물론 저항이 없지 않았고, 총 4번 방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야 했지만, 울고불고하는 격렬한 저항은 아니었다. 처음엔 침대 너머 앉아있는 내 손을 잡으려고 하였고, 그다음엔 아빠가 보고 싶으니 불러달라고 하였고, 그것도 통하지 않자 배가 아프니 문질러 달라고 하였다. 신기한 것은 그러는 동안에도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나오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불을 끄면 침대에 누워있기로 한다'는 첫 번째 약속을 나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내가 4번 째로 나갔다 돌아와서 침대 옆에 앉았을 때, 테오는 약속대로 조용히 누워 잠을 청했고, 10-15분가량 후 쌕쌕 잠이 들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지 40분 만이었다.


밤중 깸: 밤 중에는 총 3번을 깼다 (수면교육 전에도 평균 2-3번을 깼었기 때문에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첫 번째 깼을 때는 강하게 울었고 계속 아빠를 데려오라고 했다. 안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아 남편을 깨워 침대 옆에 같이 앉으니 그제야 조용히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로 깼을 때에는 남편과 내가 둘 다 들어가 침대 옆에 앉았더니 조용하게 다시 잠이 들었다.  


기상: 아침에 눈을 떠서 알람시계의 불빛이 초록색인 걸 보고는 "Mommy! Mommy!! 불이 그린(green)이 됐어!!" 하고 활짝 웃으며 침대 아래로 내려와 내게 폭 안겼다. '시계의 불빛이 초록이 될 때까지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기로 한다'는 세 번째 약속을 기억한 것이다. 스스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첫날의 경험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테오가 내가 얘기한 3가지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미리 설명을 하면서도 분명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테오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구나 싶었다. 테오를 더 믿고 말 한마디 한마디 진심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수면교육 성공?

첫날 이후로 지난 열흘 동안 테오는 수면교육을 계속해서 잘 따라와 주었고, 나는 1-2일 차 침대 옆, 3-4일 차 침대와 방문의 중간, 5-6일 차 방문 앞, 7-8일 차 방문 밖을 거쳐, 9-10일 차인 어제와 오늘은 내 방 침대에서 베이비 모니터를 보며 테오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테오는 15분이 걸릴 때도 있고 50분이 걸릴 때도 있지만 혼자 침대에 조용히 누워 뒹굴거리며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혼자 자야 한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있다. 해야 하니 해낼 뿐.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Mommy 방에 가지 마"라고 하고, 불을 끄면 침대에 누우러 들어가면서 뿌엥 울기도 한다. 굿나잇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게 나가지 말라 설득하고, 내가 나가면 잠들기 전 머리맡에 둔 가족사진을 만지작 거린다.


그럴 때면 안쓰러운 마음에 이제라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이만큼 잘 따라와 준 이상 곧 씩씩하게 적응할 거라 믿고 기다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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