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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07. 2021

선 넘으면 반칙

#13. 자글자글

나이 들수록 뼈저리게 와닿는 생활형 문장들이 있다.


1. 성격이 팔자다.

2. 나에게 맞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3. 세상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골방에서 혼자 떠드는 기분으로 글 쓰는 내가 폭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 세 가지만큼은 날이 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성격을 고치는 건 팔자를 고치는 일 이상으로 어렵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쓰인다.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오늘은 적인가 싶다가도 내일은 동지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호감이다가도 다른 날엔 뒤통수만 봐도 열이 오른다.


반대로 이걸 믿어도 되나 싶지만 꾸준히 따르고 있는 문장도 있다.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본다.’


이 문장이 믿을만한 말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다. '생각은 마음에 속는다'는 말도 있듯이 감정은 불합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믿는 편이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순간 인간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사인을 무시해서는 안될 거 같다. 그게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회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엔 왠지 모르게 삶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져 그간 내가 믿어 왔던 것들을 의심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치열하게 산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도 한 번쯤은 마음의 저항을 거스르면서 견뎌야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네가 드디어 어른이 됐다고 했다.


사회생활은 각자의 상식 기준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나만의 답안지가 있고 그걸 너무 신뢰한 나머지 납득이 안 되는 일은 틀린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틀렸다고 생각했던 게 맞기도 하고 맞았던 게 아니기도 했다. 사람도 사회도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예전처럼 객관식으로 판단하는 걸 그만두고 있지도 않은 상식을 찾기보다는 이해가 가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나누어 생각하기로 했다. 저 사람은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지만 이유를 듣고 보니 그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해. 또는 무례하게 굴고 사과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양심은 있는 사람이네. 이렇게 논술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용지물이 된다.


대학생 때 여의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페가 지금처럼 일상적인 공간은 아니었고 직장가다 보니 정장을 차려입은 손님이 많았다. 대체로 예의가 바르고 친절했지만 직장인 특유의 신경과민 증세는 감출 길이 없었고 그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이상한 행동을 했다. 아침 단골 중에 매일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여자 손님이 있었다. 그녀는 커피가 나오기 전에 반납대에 가서 물을 한잔 마시고는 반드시 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신기한 건 그 컵이 종이가 아니라 플라스틱이었다는 거다. 식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플라스틱 물컵. 조금 이상했지만 뭐 상식이 다를 수도 있다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플라스틱 물컵이 일회용으로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하루는 보다 못한 매니저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 컵은 다시 쓰는 거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 여자는 조용하게 알았다고 한 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우리는 그 여자가 가고 나면 쓰레기통에서 컵을 주웠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남자 손님도 있었다. 그 남자는 언제나 커피가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납작한 뚜껑으로 닫아주세요'라고 말했다. 돔형 뚜껑이나 납작한 뚜껑이나 빨대가 들어가는 것도 똑같고 음료 맛이 변하지도 않는데 매번 진지하게 부탁하는 게 신기했다. 나중에는 모두가 알아서 플랫 뚜껑을 집어 들었고 가끔 새로운 아르바이트 생이 돔형을 쓰려하면 정정해주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그 남자는 머쓱해하면서도 눈짓으로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별것 아닌 일에 신경을 쓰더니 별것 아닌 일에 고마워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카페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매장 자리도 꽉 차고 주문대 줄도 길게 늘어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좁은 주문대에서 대여섯 명의 아르바이트 생들이 서로 음료를 던져주는 지경이 되어야만 손님들은 화를 내지 않고 매장을 나섰다. 폭풍 주문이 끊기고 설거지를 시작할 즈음 또 다른 손님이 몰려와 너나 할 것 없이 멀티로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주문을 받다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던져주고 빵을 굽다가 포인트를 적립하기도 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한 남자 손님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얼음을 두세 개만 넣어달라고 했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남자 뒤에 서있는 줄을 보면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주문이었다. 음료를 집어던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뭐해 주문을 받던 내가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얼음을 넣어 건네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얼음이 네 개 정도 들어갔던 모양이다. 남자는 받자마자 '내가 얼음 두 개만 넣어달라고 했잖아!!'라며 소리 질렀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자기가 시킨 대로 되지 않으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성향의 사람. 누구나 타고난 성질이라는 게 있고 심지어 돈까지 지불했으니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에 얼음을 넣는다면 두 개가 적당한 거 같다. 네 개가 많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이 세 번째 남자가 정말 싫었다.


그 남자는 그런 성질의 사람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직장 상사가 넣은 얼음 다섯 개에도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었을까. 같은 일이고 그는 여전히 싫었을 거다. 카페에서 그 남자가 한 행동이 그렇게 틀린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 커피를 다시 뽑아줬지만 그 별것 아닌 일에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사람은 마치 눈앞의 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 기준만 내세웠고 그게 이뤄지지 않자 화를 냈다. 그날 이후로 그 일은 나의 기준선이 되었다. 그냥 이상한 사람과 손 쓸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속이 안 좋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을 더 자주 보게 된다. 다시 한번 기준을 바꿔야 하나보다.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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