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자글자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사람을 위인이라고 한다.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의 공통점은 과거에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 한 일을 해내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현재는 살아있지 않다는 거다. 요즘은 동시대 인물 중에 유재석이나 방탄소년단, 김연아처럼 특출난 재능을 선보이는 사람의 위인전도 만드는 추세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위인은 먼 옛날에 죽은 사람이었다. 현재와 동떨어져서 새롭게 찾을 흠도 없고 인생을 각색해도 증명할 사람이 없으니 더 특별해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은 위인이 될 수 없다고 했었다.
태어난 인간의 공통 목표는 죽는 거다.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일상적인 삶이 누군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를 빛바래게 하진 않겠지만 범인의 삶이 길어지면 특별했던 사람도 다시 평범해진다. 살아간다는 건 평범함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누군가는 흠을 찾아낼 테고 어떻게 그 순간을 잘 넘어간다고 해도 흐르는 시간 속에 평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100년이나 살면서 죽기 직전까지 위인성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현재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요즘 취업 준비 기간이다.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바로 그 취준 기간. 인생을 끝없이 뒤돌아보는 시기다. 이름, 나이, 고등학교, 대학교, 경력, 자격증, 성장과정, 지원동기 등등 등등을 입력하다 보면 다시 원점에 선 기분이다. 그냥 하루를 살아갈 때는 그럭저럭 나를 칭찬하며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불특정 다수와 경쟁하며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왜 이리도 부족한가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그런 날이 된다. 아 그때 공부를 좀 더 할걸, 왜 자격증 하나 더 따놓지 않았을까, 매년 새해 목표인 영어공부는 이렇게 또 발목을 잡는구나. 깊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대답 없는 미지 세계의 결과를 기다리다 자책감에 빠져 잠든다. 정신 소모가 심한 일이다. 그럼에도 다음날은 멱살 잡고 일어나 또 다른 곳의 문을 두들겨야 한다. 왜냐? 잔고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직 경험이 있는 나는 이 생활이 좋지는 않지만 한 회사를 오래 다니거나 도전 경험이 적은 사람에 비하면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때가 왔고 해야 하는 일을 수행 중이다. 그런데 이번 구직활동은 이전과 좀 달랐다. 내가 사회활동을 시작할 즈음만 해도 인스타나 유튜브, 인공지능기반 추천이 이렇게까지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나는 성과나 수치보다는 퀄리티가 중요한 작업자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매출이나 마케팅에도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채용공고 자격요건을 보다 보니 어느 포지션이든 SNS 계정 팔로워 1,000명을 만들어 낸 게, 구독자수가 많은 채널을 가진 게 굉장한 경쟁력인 거다. 예전에는 특정 직군에만 필수 조건이었던 모객 능력이 더 넓게 우대사항으로 변해있었다.
예전에는 좀 더 양과 질에 대한 균형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가 꼭 반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같이 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인기가 많거나, 작품성이 좋거나 가끔 그 둘을 다해낸 성공작이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유행에 별 관심이 없어서 모두가 보는 건 잘 보지 않았다. 폼 잡으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여러 번 도전해 봤지만 역시나였고 유행은 취향과 다르다는 확신만 얻었다. 그리고 유행이 시작되면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그 파도가 시작되면 언제나 강압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보는 건 재밌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본다고 모두가 좋아하라는 법은 없고, 인기가 높은 작품이 언제나 훌륭하진 않다. 잘 나가는 작품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수치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수치에 민감한 건 돈이 걸려있기 때문이고 돈은 중요한 문제지만 전부는 아니다. 성과는 여러 각도에서 평가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쌓여 평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질이 양으로 이어지길 바라던 시기는 끝난 거 같다. 성공한 작품에서 점점 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지자 양이 곧 질이 되었고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한때 문화강국이었던 일본은 현대 아시아 문화를 이끄는 리더였다. 버블을 등에 업고 각 분야에 다양성과 독창성을 화려하게 꽃 피웠다. 하지만 와(和:화목)를 중시하는 섬나라 성향상 실제로는 우리나라보다도 다수의 의견에 민감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좋다고 하는 건 최고로 좋은 게 되고 한번 정해진 건 잘 바꾸지 않는다.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반짝반짝하던 일본 문화는 어느 순간 맥없이 시들어 버렸다.
양이 중요해진 걸 실감하며 요즘 인스타그램의 하트 숫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엄청나게 팔로워를 늘린 친구도 있고 게시물 하나를 올리면 댓글이 많이 달리는 친구도 있다. 제자리걸음을 넘어 점점 하트가 줄어들기만 하는 나의 계정이 불현듯 마음에 걸린다. 예전에는 있는 듯 마는 듯했던 인스타였다. 뭐라도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에 매일 성실히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오히려 하트의 영향력을 알아버렸다. 장기간 SNS가 정신건강에 좋지 못할 뿐 아니라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업 계정을 만들기 위해 빠른 시간에 팔로워를 모은 친구는 방법은 나와있고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그 일을 하는 직업이 많이 생겨난 그런 시대다. 소위 팔이라고 불리는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들은 꽤 큰 영향력을 행세한다. 영향력은 곧 돈이 되고 돈은 어느샌가 권력이 된다. 삶이 더 복잡해졌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아직도 마음에 저항이 있는 건 왜일까. 정말로 사회부적응아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했던 반 고흐는 죽고 나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진정으로 동경했던 고갱은 점차적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귀를 자른 고흐에게서 도망갔다. 나는 반 고흐가 그 어떤 평가와 보상도 없이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다는 게 그가 남긴 그림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