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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Nov 06. 2021

#65. movie sketch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네필의 대답


 <듄>은 <시카리오>, <컨텍트>, <블레이드 러너 2049> 단 세편으로 영화 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신작입니다. 20세기 최고의 SF소설로 평가받는 프랭크 허버트 원작 [ 듄 ] 시리즈를 바탕으로 1권의 반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무려 두 시간 반 동안 공들여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대작이지만 영화는  <듄 : 비기닝>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떤 인상만 남기고 끝나버립니다. 오히려 원작을 본 사람이 (저도 책을 읽고 봤습니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을 거 같은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선별해 엮었고, 무엇보다도 머리로 상상했던 풍경을 뛰어넘는 영상미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비주얼이 스토리나 구성보다 앞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듄>은 방대한 이야기의 뚝뚝 끊기는 흐름과 아쉬운 매듭에도 불구하고 우주, 사막, 전쟁 등 블록버스터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폴의 가족이 새로운 행성, 아라키스에 이주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인데, 이 씬은 왕족의 등장을 다룬 영화 중 가장 강렬한 <라이온 킹>의 오프닝을 뛰어넘었다 싶을 정도입니다. 영화의 반 이상을 IMAX로 촬영했고 굳이 IMAX로 찍어야 했을까? 싶은 장면은 없습니다. 세계관을 압축시킨 건조한 장관은 대부분 실제 풍경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IMAX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듄>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과감한 스케일과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드니 빌뇌브가 <듄> 감독을 맡은 건 현재 잘 나가는 감독이고, 원작의 팬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영상화를 꿈꿔왔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만큼 <듄>을 찍기 위한 자질을 완벽히 갖춘 감독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듄>에는 그를 스타 감독으로 만든 영화 세편의 특징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시카리오>의 황량하고 건조한 배경과 뒤를 감추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컨택트>에서 보여준 미지 세계에 대한 표현력과 비주얼을 현실화하는 능력, 마지막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보여준 미래 기술과 계급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그가 전작에서 선보인 장기들은 모두 <듄>에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아마도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 관객은 감독이 자기 장기를 답습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새로운 걸 바라는 관객에게 이미 알고 있는 연출을 섞어서 보여주는 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드니 빌뇌브의 뛰어난 영화 세편이 지닌 장점은 <듄>에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처음 주목받은 작품은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입니다. 현재의 정적인 스타일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죠. 역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액션마저도 건조하게 찍는 그가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흘러넘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건조한 연출을 하나의 스타일로 완성하고 난 후에도, 드니 빌뇌브 영화에서 인물이 감정을 드러낼 때면 작품 전체의 톤과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가 케이트를 대하는 태도나 <컨택트>에서 두 주인공이 호감을 느끼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가장 최근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감정 표현이 한층 섬세해졌지만 몇몇 부분은 여전히 익숙한 느낌으로 삐걱거렸죠. 게다가 <듄>은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특별한 규칙과 배경, 설명해야 하는 기술도 많죠. 그래서 책을 보고 난 후 감정을 매끄럽게 그리지 못하는 감독이 복잡한 인물관계도를 어떻게 소화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원작에서 레토, 제시카, 폴의 관계는 훨씬 복잡하고 그들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쉽지 않거든요. 진화한 드니 빌뇌브는 <듄>에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짧고 명확하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책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응이 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꽤 만족스러울 겁니다.  



레토와 제시카는 공식적으로 부부였지만 신분 차이로 결혼하지 못해 언제나 주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각자 삶의 목표도 달랐죠. 하지만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왕국의 정치판 한가운데서 폴을 낳고 사랑으로 키우며 누구보다도 서로를 신뢰했습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황제의 명으로 낯선 행성으로 이주합니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전, 긴장감이 감도는 우주선 안에서 제시카는 남몰래 레토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레토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화답하죠. 감독은 복잡한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레토와 제시카가 진정으로 의지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한 번에 보여주는 거죠. 찰나였지만 두 인물의 오래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듄>에서 드니 빌뇌브의 감독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전보다 한층 세련되어졌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극장의 <듄>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아마도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코로나와 더불어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등 OTT 시장이 커지면서 극장은 설자리를 잃었습니다. 침체된 영화 시장은 영화관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죠.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영화관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관객은 극장 개봉을 기다려야 했죠. 그런데 상황은 변했습니다. 고전부터 최신작까지 엄청난 DB를 지닌 넷플릭스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자 사람들은 극장에 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극장 개봉작끼리만 경쟁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넷플릭스 안에 쌓여있는 무수한 '보고 싶어요' 리스트와도 겨뤄야 합니다. 개봉작은 매번 이미 검증이 끝난 불멸의 고전들보다도 재미있어야 해요. 넷플릭스가 초창기 사용자를 끌어들인 전략은 유능한 감독의 작품을 독점 공개하는 거였습니다. 영화감독들에게 극장을 버리게 하는 대신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죠. 언제나 자율성을 얻지 못했던 감독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였던 극장을 떠나 넷플릭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의 넷플릭스는 극장가와 비슷해졌습니다. 시청 환경상 필연적으로 더 빠르고 단순한 전개가 필요하고, 작은 화면으로 시청하는데도 블록버스터 현상은 여전합니다. 오락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겠죠.



사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는 건 굉장히 폭력적인 경험입니다. 전 국민이 폰 중독인 시대에 2시간 내내 핸드폰도 못 보고, 음악도 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옆사람과 이야기도 나눌 수 없죠. 어두운 공간에서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눈앞에 나오는 화면만 바라봐야 합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그 외에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불쾌한 경험을 하는데 돈까지 내야 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도 심합니다. 그래서 전 모든 영화가 가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엉망으로 만든 영화는 폭력적이고 불쾌한 경험입니다. 저는 영화가 정말 싫을 때 종종 천장을 보곤 하는데 그 방법 외에는 눈앞에 들어오는 영상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영 중에 천장을 보게 했던 영화들은 만든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잘 만들지 못한 영화는 고문이죠. 불쾌감이 극에 달하면 관객은 극장을 나섭니다. 그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가장 모욕을 느끼는 행동일 겁니다. 현재 극장에서 꼭 개봉해야 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건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두 시간 동안 관객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이거나, 아니면 억지로 집중시킬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가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한 지금, 화면을 보지 않고 소리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라디오 극장 같은 영화나, 사유의 깊이가 너무 얕아 3분의 1 지점에서 결말까지 뻔히 보이는 작품을 굳이 극장에서 상영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제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건 그런 의미인 거 같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거죠.



드니 빌뇌브는 <듄>을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자연스레 전달하는 걸 포기하는 대신 그가 <듄>에서 얻은 인상을 웅장한 화면으로 채웠습니다. 왜 영화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알기 쉽고 정확한 대답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영화관이 어떤 식으로 얼마나 이어져갈지 모르겠지만  <듄>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겁니다. 오랜만에 극장을 나서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 영화관은 원래 감탄하면서 나오는 곳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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