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하버드대 출신의 의사 친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그녀에게 자신이 해외입양인이며 친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찾아보고 싶다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해외입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줄리가 보내준 입양 당시 서류에 기록된 정보만을 가지고 이 기관 저 기관을 쫓아다니며 단서를 찾아 그녀의 엄마가 계셨던 곳의 정보를 찾아냈던 것이다.
정보가 전산화되어 있지 않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뛰어다닌 사람도 없었다면 계속 잠자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용 대장 명부를 대구시청 홍선생님의 도움으로 캐비닛 속에서 찾아냈고 경찰의 도움도 받았다. 대구 시립희망원의 지하창고를 백 팀장님이란 분과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나하나 확인해서 찾아낸 흔적.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그곳에 계셨었다는 것. 입양 서류의 이름과는 달리 그녀의 본명이 따로 있었다는 것. 그녀의 생일이 다른 날이었다는 것. 엄마가 돌아가셔서 만날 수는 없었고 그녀는 많이 슬펐지만 자신의 뿌리를 확인했고 생일과 본명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 의미 있어 하며 감사를 전했다.
이후 줄리는 그녀에게 다른 입양인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냐며 손을 꼭 잡았고 대구의 미혼모 시설에 기부를 했다.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꼭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해외입양을 갔던 줄리가 성인이 되어 돌아와서 한국의 미혼모 시설에 기부.
줄리와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김유경은 이 일을 겪기전과 다른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일을 혼자 할 수 없다며 주변 사람들을 모으고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배냇저고리만 입고 한국을 떠난 아기들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배냇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냥 평범한 주변 지인들과 함께 무언가 하기 시작했다. 막연하지만 뭔가 해야할일이 있으면 나도 거들겠노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