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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Oct 17. 2020

내 맘대로 써보는 자기소개서

저를 뽑아주십시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부족함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이렇게 뻔하게 시작하기보다, 저에게 일을 맡기시는 입장으로 볼 때 필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을 간단히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성장 배경', '입사포부', '지원동기' 같은 지루한 항목은 빼고 자유롭게 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제 블로그부터 시작해 각종 닉네임을 'lateBloomer'(늦게 피는 꽃)로 등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20살에 대학에 들어가 29살에 대학에 졸업했습니다. 전공이 적성에 안 맞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어릴 때부터 주변과 맞춰 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20대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이렇게 정해진 테크트리를 그저 밟아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게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20대 초중반을 방황하며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생겨, 남들은 졸업하고 취업을 생각하는 나이인 25-26살에 처음으로 진지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프로그래밍은 제 적성에 맞았고 지금까지 개발자의 진로를 꿈꾸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계획한 삶을 사는 시기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남들보다 늦었다는 초조함에 실패감은 더욱 크게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준 한 문장의 명언이 있었습니다.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_Aesop


 느리지만 꾸준하기만 하다면 경주에서 이길 수 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경주에서 이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안 된다는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주변과 비교하느라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 상황은 평탄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늦었지만 꾸준히 가면 결국 결승점에 닿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토끼가 먼저 결승점에 다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출발부터 크게 앞서 나간 토끼들을 아직 따라잡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꾸준할 것입니다. 

언제 한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해도 그 분야에서 80%는 제 경쟁상대가 아니라 생각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뭔가를 꾸준히 하기만 해도 반년만 지나도 80%는 나가떨어진다. 나는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얻은 실질적인 이득도 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인생에는 '정답'이 있고, 그 길을 벗어나면 '오답'이 되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도 어릴 적에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실패감을 계속 맛보던 그때, 비교를 끊어버리고 귀를 닫고 저의 길만 묵묵히 걸었을 때 오히려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을 즐깁니다. 

물론 저도 아직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패가 저를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느 것을 알고 더욱 적극적으로 도전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배우기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제 성향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스펙을 위해 공부하면서도 그 공부를 즐기는 분들도 많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공부가 부담이었고 싫었습니다. 이건 어릴 때부터 맞아가며 주입식으로 학습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겠지요. 남들보다 늦었기에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는 경쟁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을 제 차별점으로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도, 자격증을 위한 공부도 아니었기에 부담이 없었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은 배움을 불러온다고 했던가요.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은 그 분야와 연결된 다른 분야의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고, 그 호기심은 곧 습관이 되어 학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행위가 되었습니다. 저는 뼛속까지 공돌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철학, 역사, 행동경제학, 윤리학, 인지심리학을 비롯한 인문계열의 학문에도 호기심을 느낍니다. 작년에는 자체적으로 '1주 1독 1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한 서평을 써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https://blog.naver.com/popdf10) 평생 새로운 것을 학습해야 하는 개발자에게 있어 '배우기를 즐겨하는 성향'은 꽤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교에서 자유해진 이후에, 인생의 본질에 대해 더 고찰할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좀 더 깊게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 중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비본질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하면 자신에게 맞는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이, 경력, 무늬... 이런 것들이 본질적으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단지 수단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 아닌 '내가 원하는 길'을 걷게 되니 풍성하고 행복한 삶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것 같습니다.


 넷째로, 코딩 공부와 개발 일을 하며 보다 논리력과 꼼꼼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디버깅을 들겠습니다. 버그를 고치는 과정은 과학에서의 실험과 같습니다. 어떤 원인이 버그를 발생시키는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검증'(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가설이 맞았다면 해당 코드를 고치고, 가설이 틀렸다면 다른 가설을 세웁니다. 이 과정은 단계 단계마다 논리적인 사고의 전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코딩은 한 글자, 한 줄 때문에 기능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문서 작성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확인을 하고 테스트해야 합니다. 

몇 년 간 코드와 뒹굴고 이진수와 메모리를 뼛속까지 새기며 코딩을 하다보니 컴퓨터처럼 사고하도록 두뇌가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와 결혼한다는 표현이 있지요.




 너무 좋을 말만 한 것 같으니 이제는 안 좋은 말도 할 차례인 것 같네요. 저는 수렴적 사고보다 확산적 사고를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공중도덕을 배운다고 가정해본다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려야 해'라고 배웠습니다. 수렴적 지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면, 확산적 지능은 이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여러 가지 예외상황을 상정해본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건 어떤 기준을 둬야 하는 거지? 내가 다리가 다쳤는데도 무조건 양보를 해야 하나? 만약 나이 많은 어른 두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 양보를 해야 하지?' 이런 방식의 사고가 일이 익숙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됩니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하며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받아들이는 속도가 늦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배경지식이나 기존의 데이터가 없다면, 쉽게 말해 귀납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며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계속 확실하지 않고 의문인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학습이 누적되면 깊이가 쌓이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하급수적 발전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둘째로, 저는 인출이 느린 편입니다. 기억력이 안 좋은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기억력이 안 좋은 건 학습한 지식을 장기기억으로 잘 넘기지 못한다거나, 작업기억 용량이 낮은 것이 이유일 텐데, 저는 이 둘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원래 배웠던 것을 떠올리는데 가끔 애를 먹기도 하고, 말을 하다가도 가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더듬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예를 들어 상사가 '이 문제는 예전에 어떻게 처리한 거야?'라고 물어보면, 제가 다룬 문제이더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편입니다. 누구나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상대적으로 좀 더 인출에 오래 애를 써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제 약점을 알기 때문에 까먹지 않기 위해 메모를 습관화시켰고, 그날 하루 업무를 DONE, DOING, TO DO 등의 항목으로 나눠 매일 빠지지 않고 노트에 정리를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인 업무를 새롭게 할 때면 반드시 매뉴얼로 기록을 해두고 다음에 처리할 때, 혹은 새로운 사람이 처음 그 일을 맡을 때에 매뉴얼만 그대로 따라하면 될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해놓습니다. 약점이 저에게 도리어 메모하는 습관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복적인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합니다. 이전 직장에서 지루한 반복 작업을 한 일이 있었는데, 할당된 시간을 많이 넘어서 일을 마쳤던 적이 있습니다. 코딩은 8시간 넘게 집중해서 한 적이 태반인데, 반복 작업은 1시간을 채 집중하지 못합니다. 물론 주니어 때는 어쩔 수 없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일에 집중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나마 제가 실천한 방법은 바로 '명상'입니다.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명상은 집중력을 높이는데 탁월합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5분 동안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웬만한 일은 조금 더 차분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제 발산적인 사고 방식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렴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잡생각에 집중력을 많이 빼앗기고는 합니다. 하지만 명상이 그러한 잡생각을 없애고 순간에 집중하도록 도와줍니다. 업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장점이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명상에 심취해보시길(?).     

    


 저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아직까지는 lateBloomer 를 대체할 단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단어 하나를 가지고 제 20대 전체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짓밟히고 추위에 꺾여 꽃을 피우지 못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꾸준함이 제가 유일하게 토끼들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니까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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