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헨리 마시
저자는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의사이다. 뇌를 다루는 의사이기 때문에 죽음을 그 어떤 의사보다 많이 보아왔다. 뇌 수술은 조금만 실수해도 영원히 불구로 살거나 수술이 끝나고 얼마 안가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경험담을 들으며 환자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과연 나의 소중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 것인가'
신경외과 의사가 본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1.5kg의 우동사리 같이 생긴 단백질 덩어리에 더 이상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것? 아니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어떤 사건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이다. 죽음 곁에는 환자도 있지만, 그 죽음을 함께 경험하는 가족과 다른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환자의 최선만을 생각하기에 의미 없다고 판단한 치료를 과감히 포기한 적도 있지만, 환자의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서라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수술도 감행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면 과연 수술로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 그 환자를 위한 길인지 의문이 점점 커진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살 바에는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의사로서 일을 쉽게 하려면 그냥 모든 환자를 수술해버리면 된다. 이를 통해 많은 환자들에게 끔찍한 뇌 손상이 생길 수 있고 그 환자들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다.
(p. 175)
나는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이다. 사람이 죽는다면 천국과 지옥 중 한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이 앞선다. 무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죽음)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집착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조그만 방을 나와 어두운 병원 복도를 걸어가며 다시 한 번,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텐데. 희망 없는 삶은 가뭇없이 힘든 법이지만 생애 끝에서는 희망이 너무도 쉽게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데.
(p. 196)
내가 이렇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가당치 않을 수 있다. 한 달간 ‘죽음’에 관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오히려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주제는 무겁고 깊다. 감히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어떠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혈관으로 덮인 이 기름진 단백질 덩어리와 그걸 보면서 내가 하는 생각이 정말로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을까? 언제나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이 미치광이 같은 결론 자체를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정신을 차리고 수술을 계속한다.
(p.45)
인간의 몸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더욱 우리의 삶도 신비하게 느껴진다. 인간도 결국 세포 하나하나의 집합체에 불과한데, 대체 어디에 우리 영혼이 들어있다는 말인가.
어머니의 몸과 뇌는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껍데기가 됐다. 나는 종종 침대 곁에 앉아 어머니의 뇌를 만드는 수백만 개의 신경세포와 무한한 연결들, 그리고 어머니의 자아가 어떻게 몸부림치며 꺼져가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그 마지막 새벽, 일하러 가기 바로 전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얼굴은 푹 꺼지고 야위었고 어떤 작은 움직임이나 말도 없으며 눈도 감고 계셨지만, 물을 드시겠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정확하게 알아듣고 고개를 저으셨다. 암세포의 침공을 받아 무너져가는 몸 안에는 ‘어머니의 자아’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p. 274)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위 대목을 읽으면 그 신비함에 깊은 고민에 빠져들지 않을까.
목숨은 내게 있어 ‘모든 것’이다. 죽음을 연구하는 철학에서 ‘박탈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박탈 이론은, 죽음이 안 좋은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었으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는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끝’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우리는 그 끝을 만나게 된다. 내 소중한 사람의 끝도 만나게 된다. 내가 죽어서든 상대방이 죽어서든. 그렇다면 우리는 괜찮은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괜찮은 죽음에 대한 각자의 철학을 살아있을 때부터 미리 살아두어야 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p.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