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애니멀 - 데이비드 브룩스
이 책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책이다. 남녀 두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만나서 결혼하고 성장하며 겪는 인생에 대한 소설 혹은 에세이라 할 수도 있고, 한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라나 독립하고 가정을 이루며 겪는 실존적인 고민과 문제들을 다양한 레퍼런스로 설명하는 심리학 서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둘을 아주 적절하게 섞어서 소설의 형태에 심리학 지식을 아주 잘 녹여냈다.
최근에 남녀가 서로 이성을 대하는 무의식적 방식을 고민한 적이 있다. 주변 사례를 보았을 때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고 접근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라 느껴졌다. 오랜 고민 끝에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자식을 낳아줄 짝을 찾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관심이 발산하는 경향이 있고, 여자는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줄 남자를 기다리는 경향이 많아 그 관심이 필터링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결론을 내렸다. 관련하여 잠자리 관련 흥미로운 설문이 나온다. 대학생에게 각각 처음 보지만 매력적인 이성이 잠자리를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 얼마나 흔쾌히 받아들일까?
연구진이 고용한 매력적인 여성의 제안을 받은 남학생 가운데 75%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매력적인 남성의 제안을 받은 여학생 가운데서는 단 한 명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p.24)
물론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75:0이라니. 내가 내린 가설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설문 결과이고, 내용도 예상 외라 아주 흥미로웠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사랑하는 남녀 두 사람이 만나 아이를 낳는다. 유년시절 아이가 성장하고(특히 두뇌) 배우고 생각하는 방식을 상세히 알려준다.
사람이 성장한 뒤에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조상과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런 관계가 사람을 창조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 사람의 뇌는 하나의 두개골 안에 담겨 있는 물질이다.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네트워크, 즉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뇌와 뇌 사이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결과이다. 뇌와 마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p. 75)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외부와 관계를 맺으려 애를 쓴다. 1차적인 욕구(식사, 수면, 배설)를 해결하고 남은 시간에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맺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집착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모, 특히 엄마와의 관계를 뱃속에서 시작한다.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수정이 채 되기도 전부터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를 통해 아득히 머나먼 조상과도 관계가 맺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아기는 어떻게 하면 부모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부모와 적절히 밀당을 하며 어떨 때는 웃음으로, 어떨 때는 울음으로 관심을 받는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식 습득의 4단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지식 습득의 1단계는 우선 지식 습득이다. 지식은 선형적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쌓인다. 학습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흥미롭고도 동기부여가 되는 구절이 바로 이 대목일 것 같다.
인간의 지식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늘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더 빨리 지식을 획득한다.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기억하는 속도와 질도 강화된다.(p.137)
2단계는 정체성을 규정하고 의식적인 지식을 무의식적 지식으로 변환해 자동화하는 단계이다. 자동화는 반복을 통해서 획득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되 기존에 있던 지식과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새로운 것이 내 것이 된다.
3단계는 통합된 암묵지식(체화되었지만 설명하기는 힘든 지식)이 표면으로 나오게 하는 단계이다. 아웃풋 식 공부가 이 단계가 되겠다. 본인이 공부한 것을 떠올리고, 말하거나 쓰고, 시험을 보면서 강력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4단계는 통찰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주제에서 비슷한 패턴을 찾아내거나 연결시켜 개념을 확장시키는 단계가 된다. 이때를 보통 '유레카' 단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사실은, 도덕적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도덕심을 기르려면 직관주의 관점으로는 상호작용을 하라고 하고, 이성주의 관점으로는 철학적으로 사색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과 환경 만으로는 자연스레 도덕성을 기르기는 어렵다. 도덕은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는 근육처럼 꾸준히 기르면 키울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의 초점처럼 자동으로 맞춰진 초점을 가끔 수동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동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정신은 자동적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처리 속도가 느린 의식적인 반성 과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수동 모드로 바꿀 수 있다고 그린은 주장한다.(p.436)
이 책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의식과 감정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때에야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에서 각 시기마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겪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과 앞으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미약하게나마 통찰을 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인생의 방향성과 관련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뇌에 쾌감이 요동칠 때는 긴장감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행복한 인생은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리듬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어려움에서 조화로움으로, 다시 어려움에서 조화로움으로 변하는 리듬이다.(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