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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02. 2020

'음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사함

자가격리 2일 차_본격적인 자가격리 준비

아빠 일어나~아침이야

여느 주말 때와 같은 모습으로 아이는 먼저 일어나서, 자고 있는 나를 깨운다. 예전에 머리를 잡고 끌어올리더니, 요새는 자고 있는 내 배 위로 점프 한다. 7시 30분.. 항상 이 시간쯤이다. 같이 놀자는 거다.


오늘이 평상시와 다른 건 일어나자마자 여기저기 전화가 왔다는 점이다. 아내, 가족들, 어린이집 원장님 등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와 아이의 상태를 물어왔다. 놀아 달라며 내 손을 잡고 끌고 매달리는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거듭 얘기하며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반복적으로 같은 답변을 했다. 나와 아이의 체온은 정상이며 몸살 기운이나 별도의 컨디션 저하가 없었다고. 보건소에서는 오늘 오후쯤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통화한 직원의 뉘앙스로 봐서는 그보다 좀 더 일찍 나올 것 같은 눈치였다고 말이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아침을 만들어 먹였다. 매일 어린이집 등원은 내 담담이었기 때문에 아침을 만들어 먹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오늘은 쉬이 집중할 수 없었다.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다가오니 필시 긴장했던 것이다. 혹시나 듣지 못할까 봐 핸드폰을 소리 모드로 전환하고 음량을 최대로 키웠다.


오전 9시경, 어린이집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금 전 통화했는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을까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버님!! 아이 결과 들으셨어요? 음성이래요!!

“아 그래요??? 너무 다행입니다!!! 아직 저는 안내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들으셨어요?”

구 보건소에서 바로 어린이집으로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추후 절차와 조치 때문인지 아이 결과만 먼저 빠르게 나온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아이만이라도 음성이 나오길 간절히 바랬는데, 안심이었다.


끊자마자 아내에게 전화 걸었다.

여보. 아이 결과가 나왔는데 음성이래

소식을 들은 아내는 오열했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걸렸으면 어떡하나 근심에 밤새 한잠도 못 잔 아내였다. 말을 하자마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목이 메어 그런지 한동안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소식이 너무 감사했다. "이제 여보가 완치가 되어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중하자. 이제는 걱정 말고 알았지?"


곧이어 보건소에서 공식 연락을 받았다. 둘 다 음성이라고, 걱정해주신 주변 분들에 소식을 전하고 추후 절차를  진행하느라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어느 정도 불확실성은 해소되었다. 아내는 이제 본인이 낫는 것에 전념하면 되고, 나는 아이와 함께 자가격리에 충실하면 된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주변에 민폐를 끼쳐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그래도 현시점에서 가장 덜 피해를 주는 결과가 나왔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 잘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나는 냉장고로 가서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고 목록을 적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삼시 세 끼와 간식까지 챙겨 먹일 총알이 내게 필요했다. 연휴 전날이라 배송 등이 지연될 것이기에 가까운 처가 부모님께 필요한 물품을 사서 문 앞에 놓아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이사 준비를 위해 냉장고의 재료들을 최소화하고 있었는데, 다시 채워 놓아야 했다.    

 

곧 나를 담당하는 전담공무원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가격리 수칙에 대해 안내해 주시며, 현재 몸 상태를 물으셨다.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는 담당 공무원분의 말씀 속에서 그래도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가격리 앱을 설치하고 매일 오전 8-9시경, 오후 4-6시경 두 번 체온을 체크해서 문진표를 작성해 달라고 하셨다. 전화가 꺼지거나, 장소를 이탈하면 자신에게 문자가 오니 연락드릴 수 있다고도 하신다. 아마도 수칙을 어기고 자가격리 장소를 이탈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겠지만, 담당자는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 상당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확인 요청드리려고요. 제가 이사를 해야 하는 날이 12일 월요일인데, 자가격리는 12일 정오에 해제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일 오후에 이사하는 것은 문제없을지요?”

 

확인해 보시고 난 후, 오후에 이사는 가능하되 집에서 나온 폐기물은 지정된 장소에 버려달라고 답변해 주셨다. 다행이었다. 꼬인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가격리 해제 전날 시행하게 되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아직까지는 마음에 걸리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깐 나중에 생각하자.

 

이제 아이와 잘 지내는 것만 고민하면 된다. 자가격리 중에 건강을 유지하면서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미션이다. 지난 3-4월 재택근무를 하며 며칠씩 아이를 봤던 적에도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가 가장 어려웠는데, 이번엔 어려움이 배가 되었다.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은 아이와 함께 집에서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아이템’ 들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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