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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03. 2020

자가격리여도 추석 분위기는 내보자

자가격리 4일차_아이와 둘만의 추석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2020년을 상당히 특이한, 기억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 한해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여름이되면 어느정도 진정되리라 생각했던 코로나19가 잠잠해질 생각이 없을 뿐더러, 사람들의 행동양식 마저 바뀐 해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코로나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나 역시 살면서 이런 추석을 또 맞이할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 문안드리지 못하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가족 구성원이 강제로 떨어져서 추석을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이와 나만 보내는 추석이라니... 아직 추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모르는 아이지만, 나중에 아이가 크면 꼭 이렇게 얘기해주지 않을까 싶다.


"2020년 추석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네 엄마가 코로나로 인해 다른 시설에 격리되어 있었고, 나는 너와 함께 2주간 집밖에도 못나가는 상황에서 추석을 맞이했거든"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장성한 아이는 이렇게 묻지 않을까?

"그럼 그해 추석엔 아빠랑 나는 집에서 뭐하고 있었어?"


'그래. 자가격리여도 추석을 못보내리란 법은 없지'


일생에 단한번만 겪고 싶은 이런 모양의 추석. 상황에 매몰되기 보단 추석이니 나름 오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었다. 


자가격리 생활을 하다보니 날짜나 요일 감각은 확연히 무뎌진다. 삶에 변화와 굴곡이 있는게 아니라,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가는 하루, <기상-놀이-아침 먹기-놀이-점심 먹기-놀이-간식먹기-놀이-저녁 먹기-놀이-취침>으로 이뤄지는 하루 일과에는 날짜와 요일은 사치였다. 그저 자가격리 ㅇㅇ일차. 격리해제까지 ㅇㅇ일 남음 정도가 유일한 날짜 감각이다. 추석 당일도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그런 날이었다.


어제 처가 부모님께서 문앞에 놓아주신 추석 음식은 이러한 일상적인 패턴에 약간의 굴곡을 준 이벤트였다. 육아를 하면서는 섣불리 만들생각을 하기 힘든 음식들. 갈비찜, 고기전, 잡채 등등. 추석 연휴 나를 항상 살찌게 했던 음식을 식탁위에 펼쳤을 때, 적어도 나에겐 추석에 대한 의미 부여는 끝났다. 명절은 먹는걸로 시작해서 먹는거로 끝나니깐.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아이와 함께 영상통화로 추석 인사를 드리고 난 후 추석에 맞는 특별한 놀이들을 시작했다. 물론 역시 '놀이'의 일환이지만, 아이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잊어버릴 가능성이 높은 기억이지만 뭐 어떠랴.. 내 기억속에 잘 저장해 놓으면 되는걸.


다행히도 지난주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며 받았던 추석맞이 꾸러미가 있었다. 집에 가지고 왔을 당시에는 '이것 할 시간있으려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놀텐데'라고 혼자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나의 하루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든든한 총알이었다. 역시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다. 


사실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추석 인사를 드리면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마땅한 방편이 없었다. 집에 있는 한복을 잘 입혀서 절하는 영상이라도 찍을까 하다가, 자칫 마음이 약하신 처가 부모님이 오열하시지 않을까 생각되어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가뜩이나 둘이 자가격리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시는 부모님께 소금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꾸러미 내용물을 보면서 이거다! 싶은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송편 만들기 키트'. 아이들이 만들기 쉽도록 구성하였다.  음식 만들때 자기도 같이 하겠다고 달라붙는 녀석에게는 이게 제격이었다. 아이의 추석도 기념하고, 만드는 영상과 사진을 양가 부모님께 보내드리면 그래도 웃으면서 보시겠지.

 

음식으로 놀이할 때는 '어느타이밍에 하느냐'가 중요한 요소이다. 왜 우리도 밥을 먹고 나서 장을 보면 상대적으로 적게 사지만, 배고플 때는 계획보다 많이 사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아이가 점심을 먹고 좀 놀다가 간식 먹을 때쯤 되어 송편이 완성되는게 내가 생각한 최상의 타이밍이었다. 

오전 시간에는 꾸러미에 있는 팽이 만들기, 제기 만들기, 윷놀이 등을 하며 빠르게 훓고 지나갔다. 난이도가 만 4살의 아이가 하기엔 조금 어려워 보이는 것들이라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나, 윷과 제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해양생물 장난감의 일환으로 편입되었다. 윷은 조개, 제기는 말미잘이 되었다.


 "이따 오후에는 우리 같이 송편 만들어 보자~"
"뭐 송편이 뭔데? 뭐 만드는데?"

같이 만들자는 얘기에 아이의 눈빛이 변한다. 송편은 떡인데, 추석에 먹는 음식이라고 간략하게 얘기해주고, 만들준비 하라는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온다. 어렸을때 부터 식재료를 가지고 함께 만드는 것에 관심을 보인 걸 아니 송편 만들기는 백발백중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나도 송편은 만들어 본적이 없어서 자신은 없었고, '익반죽'이라는 단어부터 생소했지만 그래도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따라했다. 패키지는 쉽게 잘 구성했으나 내용 구성이 빠져서 약간 애를 먹긴 했지만, 어찌어찌 아이와 함께 만들어 나갔다.  

자기가 깨를 꼭 넣겠다며 나는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반죽 자체가 힘이 필요해서 내가 해야 했지만, 깨는 꼭 자신이 넣겠다며 나는 손도 못대게 했다. 요것만 한번 먹어보라는 아빠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 아이는 송편에 넣는 양보다 입에 넣는 양이 더 많았지만, 잘 담아서 송편을 닫는 것까지 착실하게 완성했다. 모양이 예쁘지 않은게 더 좋았다. 아이가 만든 날 것 그대로의 모양이 좋았고, 부모님께 사진도 보여드리면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었다.

겉모습은 이래도.. 맛있었습니다.


온 바닥에 쌀가루와, 깨 등등이 흩어져도 좋았다. 영상을 받은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고, 시설에서 격리중인 아내도 즐거워 했다. 아내가 부재한 상황에도 어찌어찌 두 남자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고,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메세지가 상대에게도 전달되었길 바란다. 먼 훗날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아이와 함께 영상을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에피소드로 기억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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