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국 인턴 금쪽이들
힘든 첫 일 년을 보내면서 너무너무 기대하던 게 바로 여름방학.
그 흔한 다운타운 관광지도 못 가고 주말도 주말 같지 않아서 방학만 기다리고 있었다.
에고고고. 내가 무슨 박사생 주제에 방학은 뭔 놈의 방학.
아주 아주 헛된 꿈을 꾸었다.
방학이라도 연구는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인 휴가나 초등학생 방학생활 같지는 않겠다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도 수업이 없기 때문에 학기중보단 널널 할 줄 알았지.
그런데 방학 생각에 들뜬 나에게, 방학 2일 전 나의 어드바이저가 던진 한마디.
인턴들이 온다! 2000년생들이 온다!
대학생 인턴들을 데리고 있어 본 결과, 확실히 회사 인턴들과 또 다르다. 슴살들이니 애초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뭔가 베이비시팅과 인턴 그 중간. 심지어 법적으로 술도 못 마심. (한 명이 인턴 기간 중 생일을 맞아 술을 마실 수 있게 됨)
어드바이저: "20살들이 하면 뭘 하겠어. 아마 길에서 실험대상자 모집 전단지 나눠주는 것 정도? 그래도 공짜 인력이니 얼마나 좋니?"
학교 입장에선 무료이나 국가에서 월급을 준다. (국가 기관 예산은 이런 데 쓰는 거지)
그것도 무려 박사생과 동일한 월급!
내 월급과 동일한 인턴이 내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 랩에 배정된 인쪽이 들. (금쪽이 인턴)
경험이 미숙한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미숙함을 감추려고 모르는 걸 아는 것처럼 포장하고 에둘러서 횡설수설 얘기하는 데 말투만은 그럴싸한 게 스티브잡스의 키노트 스피치처럼 하는 것이다.
이럴수록 본인 빼고 모두에게 자신의 바닥이 쉽게 들통난다. 그러니까 그냥 솔직하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게 낫다.
그런데 한 남자애가 딱 이러길래 '아.. 네가 바로 이 구역 금쪽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딜 가도 신입 중 한 명은 꼭 저러길래.
게다가 그 아이는 'NASA(나사), 나사 인턴 하고 싶어' 노래를 부르더니 우리 랩 포닥이 나사에서 인턴 했었다는 걸 알고는 '난 니 연구가 너무 좋아, 그 연구 타이틀이 뭐라고 그랬지(제목도 기억 못 함), 디테일은 기억 안나도 너무 흥미로웠어'라고 하더라.
'제목도 모르면서 뭘 알아! 그냥 솔직하게 나사 인턴 정보가 궁금해서 너랑 일하고 싶다고 해! (속 보이는 겉치레 싫어함. 짜증).
그리고 다음날, 아직 멘토-멘티가 배정되기 전, 첫 주는 모두 논문 읽고 요약하는 게 과제였다. 혼자 예뻐하겠다고 다짐한 질문쟁이에게 일 년간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극강 노하우, 무려 '논문 읽고 원하는 부분 찾아 요약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때 그 금쪽이가 반대편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길래 '그래, 쟤도 같은 팀인데 차별하면 안 되지' 하고 똑같이 알려줬다. 그런데 역시나. 알려줄 때 오는 느낌이 있다. '아, 얘한텐 들숨날숨을 낭비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쎄--한 느낌. 왜냐하면 여러 질문을 하며 메모를 하던 다른 인턴과 다르게 얘는 계속해서 '논문은 한 번도 안 읽어봤지만 뭐 이런 건 금방 하니까'와 '연구는 한 번도 안 해봤지만 닥치면 잘하는 편이라 전 문제없어요, 걱정도 전혀 없음'이라고 실드 쳐냈기 때문이다.
아... 인턴아.... 너는 분명 논문 자료 조사하라 그러면 틱톡 링크 가져오겠구나...
어차피 나랑 일할 것도 아닌데, 그럼 뭐 하러 내 시간을 낭비하나 싶어서 빨리 일어났다.
'에이, 아까운 산소 낭비했네.' 하면서.
아무튼 아는 척, 잘난 척에 자기주장 센 전형적인 일구멍 인턴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쟤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라고 빌었다. 포닥에게 러브빔을 쐈으니 포닥이 데려가겠지 하고서.
그. 런. 데...
모두 예상하셨듯이 당연히(?) 얘가 걸렸다. (포닥이 버림...)
아 ㅆ...
벌써부터 길고 긴 험난한 첫여름 방학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