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안 했으니까 그 꼴로 사는 거 아냐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죄'이다.
부끄러운 일이 된다.
실패는 도전의 여러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나쁜것, 실패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드라마 '안나'에서 부잣집 딸 현주는 유미에게 딱히 큰 정도, 배려도, 연민도, 걱정도 없이 말한다. 정말 별생각 없이 유미가 고졸인 것에 대해 "그러게,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라고 말한다. 유미에게 더 좋은 직장 자리를 소개해 주려고 해도 "네가 학력이 좀 그렇잖아"라면서 그러게 열심히 하지 그랬냐고 한마디 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유미가 고졸인 것에는 본인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다. 여기서 현주는 딱히 배려도 악의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 명문대를 나온 현주의 학력은 전부 부모님의 기부금 입학이 만든 결과이다. 그냥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사람들은 그럴만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고 사는 것은 마치 누릴만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살아보면 열심히 하건 않건, 그 상황에서 그 상황만 신경 쓸 수 있는 것도 사치인 경우가 많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진짜 열심히 해봤냐고. 죽도록 해봤어?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이런 말들을 들어봤고 또 해왔다. 남들 다 성공하는 동안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그런데 진짜 우리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열심히 하면 정말 뭐든 이룰 수 있을까?
이 세상이 공정하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든, 혹은 누군가 평범한 우리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었거나. 왜냐하면 성공한 사람은 노력을 했고, 실력이 있어서라는 사례들은 사실도 있으나 사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았고, 실력이 없어서 저렇게 살아도 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무서운 것은 성공한 사람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볼 때뿐만이 아니라, 실패한 당사자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죄악시된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실패도 주홍글씨의 낙인이 된다.
이러니 젊은 세대가 도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다. 나의 실패를 부끄러워하면서, 남의 실패를 손가락질하면서 용서하지 못한다.
모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회가 되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종종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며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노력하는 자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 스스로와 자식의 손을 꽁꽁 묶어 무지성으로 몰아넣는다.
인간 사회는 거의 태초부터 이래왔다.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강조하면서 지배층이 누리는 것의 정당성을 아래 계급에게 새뇌시켜왔다. 그렇게 우리들이 지배당하고 계급이 나뉘어 사는 것이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누구에게나 100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사회,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사회는 얼핏 공정한 사회 같다. 그러나 누구는 원래 1000으로 시작하고, 다른 누구는 -1000일 때 똑같이 받은 100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모두 죽도록 열심히 한다. 성공을 위해서. 실패와 가난이라는 죄를 어떻게든 지워보려고.
그리고 공허한 번아웃이 온다.
결국 지쳐버린 사람들의 뇌는
남을 배려할 에너지 따위는 가질 수가 없다.
생존의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남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쳐버린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는 정말 중요한 것에 생각하지 못하고, 남과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
잘하는 것 한 두 가지만 노력해도 될까 말까인데 모든 일에 어떻게 열심히 100, 200%를 쏟을 수 있을까. 나머지는 적당히 해야 한다. 대충 해야지 살 수 있다.
아 진짜 괜찮다, 실패해도.
실수해도 괜찮다.
사진: Unsplash의Krystal 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