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 May 20. 2021

꼬비 씨 안녕?

Remember  me..

십 년 전  인도 여행 때였다.

 

강아지 꼬비 씨를  친한 언니에게 두 달 가까이 부탁해야 했다.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떨어지는 거라  너무 걱정이 됐었다.

엄마 갔다 올게.. 너 버리고 가는 거 아니야.  전화도 자주 할게..

꼬비 눈을 보고  꾹꾹 눌러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는 안드로이드 핸드폰도 없었고 국제전화만 간신히 할 수 있던 때였다.  


델리 자이살메르 푸쉬카르 조드푸르 아그라 바라나시를 거쳐 다즐링까지 왔을 때였다.

대부분의 인도 개들은 뭔가 억울하고 불쌍하게 진화되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알고 보니 인도 사람들은 개들을 때리고 학대하는 일이 많았었다. 디우섬에서 뇌가 보일 정도로 머리가 터진 채로 황망하게 걷던 개도 본 적이 있었고.  자이살메르에서는 반듯하고 잘생긴 크리켓 선수를 만났었는데  그의 사촌이 내게 그가 밤마다 동네 개들을 몽둥이로 패고 다니는 터프가이라고 한다.  청년은 겸손하고 매일 아침 기도를 하는 신실한 브라만이었는데..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인도의 개들은 사람을 불신했고 그들의 유전자에는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견생의 역사가 있는 듯했다.

 

그러다가 다즐링에 도착해서 놀라웠던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춥다.  바라나시에서부터 나의 인후 깊숙이 간직해온 온갖 바이러스 균들은 보란 듯이 추운 날씨를 만나자마자 창궐하였고 나는 며칠 동안 몸져누울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 코앞의 해발 3천 미터 고지대는 나의 저질 몸이 0.1도의 경사만 생겨도 걷기 힘들게 만들었다.


째는 네팔리, 티벳탄들의 지역이었는데  우리랑 너무 닮았다. 인도인에게는 없는 몽골반점도 우리처럼 있다고 한다. 우리네 무당처럼 샤먼의 의식도 있다. 아버지 앞에서 담배도 피우지 않는 예의범절이 있다. 우리식 칼국수인 뚝바와 만두인 모모가 너무나 반가웠다.  티벳탄의 곱창과 순대 요리도.  인도에선 못 봤던 그럴싸한 통 삼겹살과 조 막걸리인 창.. 소주 종류인 증류주인 보라보라는 지상 천국 그 자체였다.


셋째는 발바리인 우리 꼬비의 친척 패밀리들이 어디 가나 있다는 것.  억울하고 털도 짧은 인도 개들과 달리 풍성한 아이보리 갈색 털이 있고 귀여운 발바리들이 여기저기 한가롭게 드러누워서 무방비로 자고 있다.

발바리의 가설 중에 고려 티베트 황실로부터 건너 왔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개의 90 프로 이상이 발바리였다.  이럴 수가 신기하다.

이때가 여행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인도에서는 말 그대로 INCREDIBLE INDIA 라 하루하루가 놀라움과 역겨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채 공무원을 포함한 인도인들에게 속지 않고, 무사히 생존하며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 배낭여행부터 겁도 없이 끝판왕인 곳을 간 까닭이었다. 하지만 덥지도 않고 쾌적하고 음식도 우리와 맞고 풍요로운 이 곳에서 꼬비와 똑 닮은 강아지들을 보니 향수병처럼 꼬비 씨병을 앓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꼬비를 맡아주고 있는 언니와 국제전화를 했다.


"언니 꼬비 잘 지내?"


"네가 무슨 자격으로 꼬비를 찾아?"


가뜩이나 시크한 언니 목소리에 노여움과 냉랭함이 잔뜩이다.

나는 코제트를 맡겨놓은 팡틴의 마음으로 더욱 미안함과 절실함을 담아 언니에게 간청하고 매달려야 했다.


"언니 부탁이야. 우리 아가 잘 있는 거지...? "


"너 같은 건 꼬비 안부 물을 자격도 없어! 얼씬도 하지 마.."


"언니 제발.. 나도 내가 자격 없는 거 알지만 우리 꼬비 잘 지내는지만 알려줘...!"


난 거의 울부짖었다.

언니는 한 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꼬비 내일 초등학교 입학식이야!"

 

난 다음날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전봇대 뒤에 숨어 삼삼오오 쫄랑쫄랑 경쾌한 걸음으로 정문을 들어가고 있는 발바리 강아지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꼬비를 찾기 위해, 한 번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보기 위해...

강아지들은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생애 첫 등교를 하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더 찬란하고 예뻐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림색과 황갈색의 털들이 섞여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발바리들 속에서 도저히 꼬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운동장엔 반별로 강아지들이 나란히 서있고 곧 입학식이 거행되기 전의 분주함과 긴장이 섞여있었다.

난 도저히 참지 못하고 교문을 지나쳐 크게 소리쳤다.


꼬비~~!!!!!!!!

(꼬오비~~~~~~~~~~~ )

꼬오비~~~~~~~~~!!!!!

(꼬오오비~~~~~~~~~)


순간 모든 강아지들은 뒤를 돌아보고 정적 속엔 덧없는 메아리만이 학교 뒤의 산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이쯤 되면 꼬비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나에게 뛰어와서 와락 안길거라 생각했는데.

분명히 이 안에 꼬비가 있는데...

꼬비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꼬비를 못 찾고 꼬비도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그때...

들리는 기타 소리..

따라라라라~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아.. 겁나 슬펐는데.. 다행이다.

이것은 바라나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맨날 이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뚱땅거리던 용순이 때문이다.


꼬비야 나중에 내가 하늘로 가게 되면  넌 나를 알아볼 수 있겠니? 예전처럼 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