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 May 20. 2021

잘 가요  Dorothy 아주머니...

영국 Scotland, Islay 섬에서의 첫 장례식


Don & Dot.


마치 Pat & Mat처럼.. 혹은 콩과 콩깍지처럼..


두 분은 lagavulin 라가불린 증류소 앞에서 아기자기한 목공예품과 위스키 배럴을 응용한 기념품도 만들고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시는 부부다. 40여 년 전 딸들이 11살쯤 되었을 때 아일라로 이사오셔서 가리비 따는 일도 함께 하시고.. 목수일도 함께 하시고..

언제나 두 분은 아일라 최고의 팀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내가 Dorothy를 처음 본 날 그녀는 고관절 때문인지 앉지도 못하고 몹시 괴로워하셨다.

그걸 보고 타이거밤 파스를 가져온 게 생각나서 얼른 숙소로 날아갔다와서 전해드렸더니 몹시 고마워하신다.

와인도 선물로 주시고 그날은 하하호호 즐거웠는데, 10 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럽게도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고 한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래서 달려갔더니 집 문 앞 한편에 여자 핸드백이 입구를 연 채 황망하게 길을 잃은 사람처럼 팽겨 쳐져 있다. Dot을 꼭 닮은 50대 초반의 딸이 울면서 문을 열어주러 나온다.

가방을 수습해서 전해주고 Don과 Dot을 보러 들어가니 어쩐지  Don아저씨는 10 일 전보다 더 조그마해져 있다.

Don아저씨는 우유보다 하얗게 변한 Dot의 손을 마냥 붙잡고 계신다.

다른 한 손엔 머그잔을 쥔 상태로.

침대에 조용히 이불을 덮고 남편의 손을 잡고 누워 있는 Dot은 진통제 한 알 먹고 푹 깊은 잠을 주무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Don아저씨 쪽으로 몸을 돌려서 누워 있는 자세라 얼굴 한쪽만 시퍼렇게 멍처럼 시반이 생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죽은사람을 거실 한 가운데 소파에 눕혀두고

일상 같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아저씨의 다른 한 손엔 이미 식을 데로 식은 머그잔이 여전히 쥐어져 있는 채였다.

위태로워 보이는 Don의 머그잔을 뺏어서 부엌으로 갖다 놓으려는데.. 머그잔을 엉겁결에 내게 건네주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Don.


머그잔이라도 잡고 있었어야 버틸 수 있었던 거였는데..

너무나 차가운 아줌마 손을 그래야 잡을 수 있었던 건데.. 눈치도 없이 내가 그걸 뺏은 거였던 거다. 바보 똥 멍청이..!


그러고 나서 좀 진정되고 일상 얘기들이 다시 흐른다. 가끔은 웃기도 하고 농담도 나오고 왁자지껄 하다 순간 예기치 않게 정전 같은 정적이 화들짝..! 찬물을 끼얹은 것 마냥, 이 순간이 죽음 직후라는 것을 상기시켜버렸고

아저씨 입에서는 기어코


It's unreal...

탄식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55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는 이 부부가 왜 이리 부러운가.

Dot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 것이다.


일주일 뒤 포트 앨런의 작은 교회당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마을 구석구석 울리던 파이프 소리를 뒤로 하고 식장에 들어서니 아마도 평소 Dot이 좋아했던 것 같은 노래들이 교회당 안에 흐르고 있었다.

50대 초반의 여성 신부님이 진행하는데 완벽히 이해는 못했지만 이 들 부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곤조곤 농담도 섞으시면서 알려주신다. 만난 지 6주 만에 결혼을 했다는 부분에서는 교회 안 사람들의 낮은 감탄소리가..! 그럼에도 이토록 완벽한 평생의 팀일 수 있었다니..!


신부님 강론 중간 다 같이 일어나서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길래 요단강 어쩌고 하는 찬송가려니 했는데 Morning has broken이다.


Aㅏ..! 이토록 아름다운 송가라니..


아마도 Dot이 좋아했던 음악이었겠지? 마지막에 식이 끝날 땐 Eva Cassidy의 songbird가 나온다. 그 노래를 뒤로 하며 장례식장을 나오니 또다시 백파이프 소리가 비 오는 포트 앨런을 감싸고 있다. 백파이프 소리는 구슬픈 송가였다.  


걱정되는 마음에 장례식이 끝난 며칠 뒤 다시 보고 온  Don아저씨. 이번엔 아저씨 허리가 말썽이라 그때 Dot 아줌마 쓰시라고 드렸던 파스를 아저씨 허리에 붙여드리고 Dr.Kim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여전히 농담도 픽픽하고..

그러다 글썽글썽하시고..

일상이었다가 추억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를 반복하는 Don.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다.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자꾸 작아져서 소멸할까 두렵다.


부디

건강하세요.


인생에 의미가 사라져 버린 진공상태라고 하셨지만  Dot아줌마가 그걸 원치 않으실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41살에 처음 떠난 유럽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