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난 끝이 없는 터널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일, 사랑 , 친구, 모든 것에 번 아웃이 왔었다. 심지어 14년을 자식처럼 키우고 의지했던 강아지 꼬비마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아프기 시작하더니 1주일 만에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마침, 친구가 영국 리버풀에 교환 근무를 하고 있었다. 몇 년째 지속된 우울함과 모든 것이 고갈된 상황에 지쳐있던 나에게 친구는 와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추슬러 보라고 제안을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고맙게 그 제안을 받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리버풀에 와서 친구와 유럽 여행도 다니고 지쳐있던 몸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서울의 싱글 몰트 바 주인인 명 아저씨가 영국에 갔다면 당연히 아일라에 가봐야 한다고 추천해 주셨다. 아일라는 나의 최애 위스키들인 아드백, 라가불린 라프로익, 보모어, 보태니컬 진, 분나햅행, 킬 호만, 칼리라, 주라, 브룩라디가 있는 곳, 무라카미 하루키가 20년 전에 위스키 성지순례라는 기행문을 썼던 바로 그곳이다.
명 아저씨는 유능한 저널리스트이자 서울에서 가장 힙합 곳인 홍대 앞에서 성업 중인 싱글몰트 바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아저씨는 아드백과 라프로익이 200주년이었던 해에 자전거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수개월에 걸쳐서 일주하셨었다.
내가 좋아하는 바 주인인 아저씨가 추천하는 곳이니 무척 가고 싶었지만 나는 남한에서 변변치 않게 그림 그리는 가난한 백패커였다. 숙소도 비싸고 거기까지 가는 경비와 시간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심지어 인터넷을 뒤져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곳이라 나 같은 백패커들을 위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디스틸러리들이 모여있다는 이유 하나로,, 현지에 간다면 조금 더 싸게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바람으로 아일라를 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머물고 있던 리버풀에서 아일라를 가려면 4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야 하고 다시 글라스고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3시간 반을 캠벨타운까지 구불구불 가야 한다. 한국 같았으면 이미 다리를 놔도 수십 개는 이어서 흉물스럽게 직통 코스를 만들어 놨을 텐데 스코틀랜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수한다. 효율성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스코틀랜드의 가장 강한 힘인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버스 바로 옆에 펼쳐지던 아름다운 로크들의 풍광과 수많은 산과 계곡의 모습은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버스가 지나는 길에 있던 마을들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에는 이발소와 식료품 가게들이 있고 작은 카페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애기 엄마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정겹고 아름다웠다. 한국은 지방 어디를 가도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라 이렇게 낮고 오래된 건물이 만들어주는 스카이라인을 볼 수가 없다.
그렇게 3시간 반을 달리면 캠벨타운에 있는 케나 크레이그라는 항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칼막의 커다란 페리를 타고 다시 두 시간 반을 가야 아일라 섬에 도착한다.
막상 가기로 마음을 먹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무모하게 나섰지만 이미 글라스고에서 탄 버스에서부터 나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페리에 오르자마자 선실 안에 작은 카페테리아와 스몰 바를 보고 비로소 내가 아일라로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타자마자 아드벡부터 한 디램을 마시니 아일라와 왠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간 끝에 도착한 아일라는 어두워져 있었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8월인데도 덜덜 떨릴 만큼 추워서 나는 배낭에서 나의 옷들을 꺼내 잔뜩 껴입어야 할 정도였다.
내가 머물기로 한 숙소는 보모어를 지나 포트 샬롯에 있는 아일라의 유일한 유스호스텔이었지만 웬일로 버스를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당연히 배 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있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의 지나가는 아저씨가 큰소리로 지금 버스가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신다. 헉~! 말도 안돼! 배 시간에 맞춰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알고 보니 아일라에서 버스는 섬의 중고등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 같았다. 영어로 구글링을 하면서 본 중에 아일라에서는 히치 하이킹을 하라는 말을 보았던 게 생각났지만 어둑어둑해지는 낯선 곳에서 몸통 만한 배낭을 멘 동양 여자 혼자서는 쑥스럽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주저주저하던 사이에 페리에서 쏟아져 나왔던 차들은 다들 제 갈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너무 춥고 막막했다. 구글맵으로 보면 숙소까지 버스로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라 택시비도 엄두가 안 났다. 심지어 나는 유심칩도 없이 다녔기 때문에 숙소나 여행안내 센터에서 무료로 쓰는 와이파이만 가능했다. 고민 끝에 택시보다는 근처에 싼 숙소를 찾는 게 급선무 일듯 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작은 포트 엘렌의 선술집에도 물어보고 b&b 들에 노크를 해보았지만 이미 만실이거나 아예 아무도 사람이 있지 않았다. 8시가 훌쩍 넘어 버린 포트 앨런은 페리에서 내린 사람들과 차가 정리되자마자 고요해졌다.
흠 ,, 어쩐다…. 막막하네..
날은 추워서 어디 공원 같은 곳에서 노숙을 할 수도 없었다. 백패커들을 위한 저렴한 시설이 잘 되어 있던 인도와 태국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마지막까지 들어가 보지 않은 곳이 있었는데 포트 앨런의 중심에 멋지고 근사하게 있던 아일라 호텔이었다. 사실 아일라의 건물들이 낮고 아기자기하듯이 이 호텔도 그냥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아일라에서의 첫날에 나는 너무 춥고 막막해서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것 같았고 상대적으로 아늑하게 따듯한 불이 켜져 있던 아일라 호텔은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었다. 비쌀 듯하여 일부러 안 가고 버텼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너무 추웠고 저곳의 펍에라도 가서 위스키라도 한 잔 마시며 무료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대책을 찾아야만 했다.
조금 긴장하고 주눅 든 상태로 들어갔더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나이 든 남자분이 리셉션에 계셨고 나를 보자마자 미안하다면서 모든 방이 풀북이라고 한다.
휴,,, 다행이었다. 왜냐면 이곳의 방은 내 예산으로는 아주 비싼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동남아와 인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유럽은 처음이라 나의 여행 예산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한국에서 여행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아주 많이 비싼 숙소도 아니었건만 나는 백패커로서 동남아 가격에 최적화되어있었던 때라 더 거금의 숙소로 느껴졌었다.
나는 뻔뻔하게도 혹시 주변에 싼 숙소를 아는 곳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냐고 여쭤봤고 그는 나를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서 알아봐 주셨다. 그 와중에 나보고 뭐라도 먹겠냐고 하셨는데 그 제안이 너무 놀랍고 황송해서 여러 번 거절을 했고 그럼 바에서라도 뭐 마시겠냐는 제안을 하셨을 땐 염치없이 위스키를 마시겠다 했다. 몸이 추워서 따뜻하게 데워줄 무언가가 간절했고 더 이상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죄송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일라에 도착해서 마신 나의 첫 위스키는 아드백 블라스다와 분나햅행이었다. 분나햅행도 한국에서 마셔본 적은 있었지만 아일라에서 마셔서 그런지 피트 향이 없는데도 굉장히 깊은 맛이었고 특별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년 산을 따라 주셨던 것이었다. 그만큼 내가 딱해 보이셨나 보다. 이후로도 호텔 사장님은 내가 됐다고 말릴 정도로 30분이 넘도록 저렴한 숙소를 알아봐 주셔서 더더욱 죄송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런 숙소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오히려 사장님이 더 나에게 미안해하며 택시가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더는 죄송해서 나는 그분의 시간을 뺐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그래도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본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알려주시면서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연락을 하라 말씀하셨다. 이름이 롤랜드였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롤랜드의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라도 간단하게나마 초상화를 그려서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롤랜드가 전화해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아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나의 숙소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위스키로 몸도 뜨끈해져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호의를 받아서 그런지 불안했던 마음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었다. 비록 내가 머무는 숙소 4일 치의 돈이 택시비로 날아갔지만 이미 아일라 호텔에서 받은 넘치는 호의 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었다. 아일라에는 상설 택시가 없어서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일라는 여러모로 백패커 모드로 다니기엔 좀 불편한 곳인 건 맞다. 하지만 호텔에서 불러 주신 택시 아저씨는 아주 친절하셨고 중간에 ATM 기에도 들려주셔서 돈도 뽑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처음 택시 탈 때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운전석을 열고 앉으려 했었다. 기사 아저씨께서 당황하시며 거긴 내 자리야 하셨다. 한국과 영국은 운행 방향이 반대이다 보니 운전석도 거꾸로 였던 건데 나는 영국에서 택시를 거의 타지 않았었던 데다가 비로소 숙소를 간다는 안도감에 들떠 있다가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숙소로 가는데 언제 그렇게 비가 왔었냐는 듯 하늘은 맑았고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인데 해가 지고 있었다. 아일라에는 오로지 위스키만 생각하고 왔는데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노을과 풍경이 뜻밖의 예상치 못한 선물 같았다. 사람들은 다들 집으로 들어가고 텅 빈 보모어 시내와 멀리 바다 너머 지는 체리빛 노을을 보며 처음으로 아일라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음날 아일라의 첫 아침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전날 저녁에 비가 오고 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둑어둑한 아일라가 아니었다. 포트 샬롯 곳곳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고 새들은 끊임없이 지저귄다. 골목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파란 바다가 바로 보인다. 파란 파도에 어울리는 하얀 건물들이 옹기종기 햇빛을 받아 더 화사하게 반짝거렸다.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건물들 뿐 아니라 차, 도로, 나뭇잎 하나까지 말갛게 씻겨져 있는 것 같았다. 공기도 바로 앞 파도에 부서져 내린 듯 깨끗하고 달았다. 내 마음의 채도와 명도까지 높아져 버리기에 충분한 공기와 빛이었다.
아일라의 첫 아침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아침 버스를 놓쳐버렸다.
버스가 매우 드물게 있어서 다음 버스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냥 좁은 도미토리 숙소에 있기는 아까워서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덥지도 않고 쾌적해서 걸어서 일곱 시간도 넘게 걸릴 아드백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십 분을 걸었을까? 어떤 차가 멈추더니 온화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신다. 사실 나는 진짜로 걸어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보모어까지 간 다음에 다른 버스를 타고 아드벡으로 가려고 했었기 때문에 보모어에 간다 했더니 당신도 그곳으로 가신다며 태워주시겠다 했다. 처음 히치 하이킹당한 거라, 살짝 긴장을 하고 차 안을 보니 20대의 딸과 강아지가 같이 있어서 안심을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탔다. 가는 길에 대화를 나눴는데 두 분은 노르위치에서 두 달 동안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아일라에 체류 중이라고 하셨고 보모어에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잠시 나오신 거라 하신다. 너의 오늘 계획이 뭐냐 하셔서 저는 아드백을 좋아해서 왔어요. 아드백 디스틸러리에 가려고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괜찮다면 어차피 차에 기름도 넣어야 하니 1시간 정도 후에 일을 보고 같이 가보자 하신다.
오메~ 그래도 될까요?
너무나 감사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혼자 보모어 디스틸러리를 겉만 둘러보고 한 시간 뒤 루시, 클레어 모녀와 만났다. 나중에 아일라를 다녀보니 기름 넣는 페트롤은 가까운 보모어에도 몇 개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미안해하지 않게 배려해 주신 거였다. 아일라의 남동쪽 끝에 있는 아드백, 라가불린, 라프로익 디스틸러리들을 둘러보고 아쉽게도 몇몇 곳은 예약을 해야 해서 같이 다니며 예약까지 도와주셨다. 이번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곳에 같이 가자며 반대편 서쪽 끝에 있는 포트나 헤븐도 데려가 주셨다. 중간에 스파클링 비치 라면서 보모어 앞의 비치를 보여주셨다.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는 스파클링 비치였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바다의 색깔과 해초가 갈대처럼 말라져 있는 바닷가의 풍경은 몹시 아름다웠었다, 그날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페트롤에 들렸을 때 아주머니가 사주셨던 매그넘 아이스크림은 평생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 가장 아름다운 아이스크림이었다. 그 이후로 아일라에서 페트롤만 가면 아이스크림을 꼭 먹게 된다.
아일라를 방문하기 전에는 위스키에 대한 관심 밖에 없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아일라는 위스키로만 정의 내리기엔 너무 아쉬운 곳이었다.
5일 동안 아일라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는 나의 3개월 동안의 유럽 여행도 거의 막바지였었다.
다시 리버풀 친구네로 돌아가면 마지막 일정으로 아일랜드로 갈 계획이었다. 더블린에 가서 기네스 맥주와 제임슨 위스키를 맛보려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진작에 예약해두었었다. 그러고 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아일라를 떠나는 페리에서부터 쓸쓸함과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미 에든버러에서의 페스티벌 일정과 리버풀까지 가는 기차표가 예약되어있어서 하루 이틀 더 머물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왔지만 아일라는 3개월 동안 다녔던 유럽의 그 어느 곳 보다 나에게 강렬했다. 점 점 멀어지는 아일라를 향해 내가 탄 페리의 물여울들이 달아나는데, 꼭 내 마음 같았다. 여행을 하며 많은 곳을 떠나왔지만 아일라는 이상하게 나를 계속해서 그곳으로 당기는 곳이었다. 원시적인 자연의 아름다움도 어마어마했지만 그날 클레어 루시 모녀와 아일라 호텔 롤랜드 사장님의 호의가 나에게 그 무엇인가로 각인 되게 만든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위스키도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오랫동안 동경하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구경할 때에도 그리고 리버풀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엔 온통 아일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이성은 더블린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나의 심장은 아일라를 향해 뛰고 있었다. 더블린으로 가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아일라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뒤 결국 나는 더블린으로 가는 티켓을 포기하고 다시 글라스고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도저히 아일라에 꽂히는 이유를 알지 않고서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