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의 포트 앨런에 있는 슈퍼마켓에 음식 재료들을 사러 갈 때마다 바로 옆 작은 쪽창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만난 다기보다는 항상 같은 자세로 창문에 바짝 붙어서 슈퍼마켓에 오가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시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볼 수 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고양이도 그 구경에 동참하는데 고양이의 호기심 어린 눈과 할아버지의 부리부리한 눈이 창밖의 같은 곳을 향해 있을 때도 있다. 나 역시 구경 다니는 사람이다 보니 할아버지와 고양이를 항상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눈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어느 날은 문득 이 둘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바디 랭귀지로 입모양을 크게 하며
"제가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라고 여쭤봤다.
잔뜩 함박웃음을 지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바로 "그럼~"이라고 하신다.
손가락으로 창문가에 바짝 붙어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너무 예뻐서 사진 찍고 싶다 하였지만
사실은 고양이보다도 늘 그 창문에서 큰 눈을 껌뻑이며 사람들을 구경하시는 할아버지가 더 흥미로웠었다.
집 바로 앞엔 평화롭고 잔잔한 포트 앨런의 비치가 있고 바로 옆 슈퍼 마켓 때문에 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지만 작은 섬마을이기 때문에 큰 축제가 열리지 않는 이상 그 풍경은 거의 매일매일이 같을 곳이다. 그런데도 늘 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초상화처럼 있으셨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서 창문 너머로 보여드렸더니 가뜩이나 부리부리 큰 눈이 휘둥그레지신다.
안으로 들어오라 하셔서 들어가서 그림을 선물로 드렸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시다.
고령이라 몸이 불편하셔서 산책을 다니시기가 힘드니까 좁은 창문으로 보는 세상과 의미 없이 틀어져 있는 티브이가 할아버지가 볼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었던 것 같다.
비록 고령이시지만 어딘가 강인하고 억센 느낌이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젊은 시절에는 뱃사람이셨다고 한다. 거친 바다를 누비던 분이 그 좁은 창으로만 사람을 만나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그림을 드리고 나오면서 오늘이 할아버지의 최근 일상에서 그나마 신나는 날이었길 바랐다.
다음날도 그리고 또 다음날도 언제나 그렇듯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계셨다. 이제는 나랑 눈이 마주치면 더 환한 웃음을 지어 주셨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한국에서 팬데믹 때문에 발이 묶여 있을 때 듣게 되었다.
아일라에 다시 돌아가도 못 뵌다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몸을 벗고 훨훨 자유로운 몸이 되셔서 자유롭게 바다를 항해하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