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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퀭부 Jul 20. 2020

슈크림 빵

마포구 신수동 "장순민 과자점"의 슈크림 빵

  “어머니, 맛있는 빵집에서 슈크림 빵 사 왔어요. 맛 좀 보세요.”

 “나 슈크림 빵 참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하나 보구나. 나 대학생 때도 슈크림 빵을 참 잘하는 빵집이 있어서 주말마다 같이 사는 친구랑 같이 사서 먹곤 했단다.”


 나는 마포의 작은 빵집에서 사 온 슈크림 빵 포장을 뜯고 커피를 내리며 말을 이었다.


 “아, 주말 마다요? 어머니랑 친구분 모두 슈크림 빵을 좋아하셨나 봐요.”

 “그래. 그 친구랑 나랑 둘 다 참 그 빵집의 슈크림 빵을 좋아했어. 촉촉한 빵 속에 달콤하고 진한 슈크림이 가득 들어서 우리가 참 좋아했었지. 그 친구는 나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늘 자매처럼 붙어 다녔는데, 어릴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듣더니 K대 법대에 수석으로 합격했단다. 나란히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 어찌나 기뻐했던지.”


 아, 어쩐지 슈크림 빵에 대한 이야기치고는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른 빵만 드리고 들어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 친구는 동생이 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집 형편이 어려워진 데다 아직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하려니 아무리 과외를 하며 돈을 벌어도 서울에서 방세까지 내며 지내기에는 어려웠던 모양이야. 그때 마침 서울에 나와 같이 올라와 살던 큰 오빠가 군대에 가서, 친구에게 같이 지내자고 했지. 대신 주말에 먼저 일어나서 눈 뜨는 사람이 나가서 맛있는 빵을 사 오기로 하고.”

 “친한 친구랑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좋으셨겠어요.”

 “그렇지. 아무튼 그 집 슈크림 빵을 참 좋아했는데, 빵이 맛있으니 워낙 인기가 많아지지 않았겠니? 어느 날은 친구가 가서 슈크림 빵을 사 왔는데 슈크림 양이 너무 적어진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슈크림 빵인데!”

 “아, 역시 인기가 많아지면 그런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친구는 그냥 먹자고 했지만, 내가 또 가만히 있었겠니? 그 길로 빵집에 찾아갔지.”


 그리고는 빵집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전부터 이 집 슈크림 빵이 참 맛있어서 매번 주말을 기다렸다가 사 먹으러 왔는데 요즘 슈크림 양이 예전 같지 않네요. 제가 다른 빵집 같았으면 그냥 앞으로는 사 먹지 말아야지 했을 텐데, 이 빵집을 워낙 좋아해서 조심스럽지만 말씀드려요. 손님이 많아져서 그런가요?”


 이 말을 들은 빵집 사장님은 크림 양을 일부러 줄인 건 아니지만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는 다시 크림 양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쓰겠다고 하시고는 잠시 주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세숫대야 같이 커다란 보울에 슈크림을 가득 담아서 주셨다고 한다.  


 “얘, 슈크림도 빵이랑 같이 먹어야 맛있지 슈크림만 먹으려니 고역이었다.”

 “하하하, 그래도 저도 해보고 싶어요. 슈크림 한 통 우걱우걱 먹기.”


 슈크림 빵에 이런 즐거운 추억이 있으셨을 줄이야.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며 은근슬쩍 빈 접시와 컵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런데 그 친구가 있잖니. 나한테는 참 소중한 친구인데,”


 아, 역시 슈크림 빵 이야기가 아니었다.


 “똑똑하기도 한데 참 단아하고 예뻐서 K대 법대에서도 유명했다. 키도 크고 잘생긴 남학생과 만나 오랫동안 연애를 했어. 그런데 집안 때문에 남자 집에서 반대를 심하게 해서 결국 헤어지고 그 남자는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하더라. 그 남자는 지금 K대 법대 교수로 있고.”

 “아, 안타깝네요.”

 “그래도 워낙 잘나고 예쁘니까 금세 법대 동기 남학생과 연애하고 결혼을 했지.”

 “잘 됐네요. 역시 예쁘고 볼 일이에요.”

 “근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 남편은 오랫동안 고시를 본다고 공부하면서 돈 한 번 안 벌어다 줬는데, 너도 알지? 고시 낭인이라는 말. 우리 친구들은 차라리 네가 고시를 했으면 진즉 합격했을 거라고 자주 얘기했다. 그래도 이 친구는 자기 남편 기죽을까 봐 얼마나 살뜰히 대우하고 아꼈던지, 나중에는 남편이 전혀 미안함도 없이 당당하게 굴더니 결국 평생 공부만 한다고 돌아다녔다. 친구는 학교 졸업하고 사립학교 영어 교사가 되었는데, 남편 고시 뒷바라지에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곧 교사를 그만두고 영어 과외 교사를 했어. 동생들도 서울로 불러와서 직접 엄하게 가르치면서 공부시켰다.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밑바닥 인생 된다고. 그렇게 동생들에게 엄마 역할까지 다 했지.”

 “아, 친구분은 어머님이 안 계셨나 봐요.”

 “계셨지. 그 친구는 부모님이 두 분 다 명문대 법대를 나오셨어. 아버님은 대학 교수셨고, 그 엄마는 그 시절에도 사회 운동을 했어. 그래도 여자가 사회 운동을 하기 전에 가정을 먼저 돌봐야 하지 않겠니? 우리 국민학교 4학년 때, 버스를 타고 학교엘 다녔는데 가끔씩 하교 시간에 친구가 없는 날이 있어서 먼저 집에 갔나 보다 하는 날이 있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제사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제사 준비는커녕 집에 있지도 않으니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니까 이 어린애가 버스 기다려서 타고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뛰어가서 제사 준비를 했던 거야. 이걸 그때는 말도 못 하고, 아주 나중에 알았지. 이 친구 시집갈 때도 결혼 준비를 우리 엄마가 다 해주셨다.”

 “아… 친구 어머니가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래서 나는 요즘도 사회 운동하는 여자들 보면 아주 싫어한다. 우선 가정을 먼저 챙겨야지. 아무튼 그렇게 살면서 동생들까지 다 의대, 법대 보내서 다들 잘 살게 되었고, 이제 오십 넘어서 우리도 애들 다 키웠으니 이제 즐기면서 살아보자 하는데 글쎄 암 말기라는 거야.”

 “아이고, 어떡해요…”

 “그때 마침 나도 애들 다 대학 보내고, 친구는 딸이 의사로 있는 E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여기서 가까우니 1년을 넘게 매일 깨죽이며 소고기죽이며 싸다가 다녔지. 그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게, 암이라는 게 화가 풀리지 않고 쌓여서 생긴 홧병인 것 같더라고. 얘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동안 자기가 그렇게 희생하며 돌봤던 남편, 어머니, 동생들 아무도 이 애를 돌보지를 않는 거야. 어느 날은 울면서 그러더라. 어머니가 너무너무 원망스럽다고. 그 어린애가 왜 그렇게 짐이 무거워야 했는지….”


 나도 왠지 눈 주위가 시큰거렸다.


 “말기라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고, 며칠 남지 않았으니 준비하라고 의사가 말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에 얘 생일이었어. 마지막 생일이니까 동생들과 어머니에게 내가 다 연락해서 생일날 꼭 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어. 생일 당일에 내가 미역국 들고 가서 먹이고 동생들이 오기를 같이 기다리는데, 저녁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 일찍 되는 사람들이라도 먼저 오면 되는데 그것도 싫었나 봐. 언니는 하루 종일 동생들과 엄마가 올까 해서 기다렸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다 같이 왔길래 내가 동생들과 엄마 왔다고 알려주니, 절대 보지 않겠다고 하더라. 너무 실망이 컸던 거지. 그렇게 동생들과 엄마를 돌려보낸 생일날 밤 이렇게 말하더라. 나도 내 인생을 좀 챙기면서 살 걸 그랬다고. 그저 나 하나 열심히 살면 모두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내 행복은 내가 챙겼어야 했던 걸 몰랐다고. 그래도 살면서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대학 시절에 나랑 같이 살며 매일 깔깔 웃었던 그 때라고,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

 “그래도 친구분은 어머님이라는 소중한 친구가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랬지… 그 친구 가고 나서 나도 마음이 괴로워서 한참 힘들었다. 아이고, 슈크림 빵 먹다가 내가 별 얘기를 다 했다. 너도 피곤할 텐데 이제 들어가 쉬어라.”


아, 더 이상 슈크림 빵이 예전의 그 슈크림 빵이 아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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