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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zaceun Apr 30. 2024

우리는 세이노가 될 수 없다.

240430 아침단상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채널 중 알림이 뜨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채널이 있습니다. 영화와 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구독했을 그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민희진 대표가 힙하다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진짜 힙의 현신은 이동진 평론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업로드된 그의 영상은 이런 저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책 2만 권 보유자 이동진 : "자기계발서 조심하세요" (2024.04.28)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읽으려고 할까요? 정말 열풍이잖아요."
"(...) 자기계발서는 과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과를 위해서 읽는 것 같고요. 이 책을 읽고 이 책이 시키는 대로 하면, 자기를 계발하면 자기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않을까? 말을 바꾸면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죠."
"굉장히 조급증이 있는 것 같고요. 왜냐하면 그 많은 종교인과 철학자들도 이해하지 못한 인생의 핵심적인 부분이 자기계발서 한 권에 있고, 그걸 읽고 나면 자기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조급한 해결을 원하는 방식(자기계발서를 읽는)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제 생각에 많은 자기계발 책이 정신주의로 위장된 배금주의 책들인 것 같아요. 정신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돈에 관해서 말하고 있고요.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주의로 위장된 배금주의'라니...!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이후 최고의 어록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일과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매년 약 300권의 책을 검토했지만, 구매해서 정독한 책은 100권 이내이고 자기계발서는 1%도 안됩니다. 이마저도 공간의 한계 때문에 분기별로 정리합니다.


지금 제 책장에 살아남은 책 중 70%는 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샀던 시대의 고전, 철학, 인문학, 브랜드북입니다. 20%는 디자인 싱킹 워크북, 스타트업 바이블, 커리어 코칭, 글쓰기와 관련된 실용서이고 10%는 제가 마케팅했던 빅타이틀, 독립 출판물, 미래학과 관련된 과학기술, 마인드 풀니스(마음 챙김) 관련 책 입니다.


개인사를 돌아보면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자기계발서를 탐독했습니다. 특히 흙수저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좋아했는데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왠지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이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이 곧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니어 시절 스타트업에서 사수 없이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과 고군분투하면서, 현실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빛나 보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많은 사람의 도움과 운이 만나 얻어진 정말 희귀한 사례라는 것을요.


연차가 올라가고 점점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성공은 절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으며,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지니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많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마치 지금 이룬 것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된 것처럼 포장해 셀프 브랜딩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셀프 브랜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출판계에 흥하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결국 '돈을 얼마나 쉽고 빠르게 벌 수 있는지', '자산가가 알려주는 부자가 되는 방법'에 모든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2023년 베스트셀러와 도서 트렌드를 보면 우리 사회가 돈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출판] 2023년 베스트셀러로 보는 올해의 도서 트렌드는...

불안한 미래, 자신만의 역량 키우는 자기계발서 인기… 슬램덩크 시리즈 눈길

출처. 월간조선 NewsRoom Exclusive 김태완 ‘Stand Up Daddy’ (2023.12.05)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이 2023년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조사됐다. 국내 대표적인 서점인 교보문고와 예스 24가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 ‘세이노’가 지난 20여 년간 발표해 온 주옥같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믿고 있던 것들에 ‘No!’를 외치고 제대로 살아가라는 뜻이 담긴 필명 ‘세이노(Say No)’처럼 날카롭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생의 통찰을 전한다.
(...) 올해 베스트셀러 특징이라면 불확실한 미래 전망 속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역량을 단단하게 키우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계속해서 약진하는 양상을 보였다. 《세이노의 가르침》, 《김미경의 마흔 수업》, 《원씽》, 《퓨처스 셀프》, 《역행자》 등이 자기계발서에 속하는 책들이다.



세이노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세이노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죠.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다양한 곳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며 나만의 성공 방정식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경험이 모여 '고유한 나의 삶'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런 '개인의 고유성'을 말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공'을 바라보고 '실패'한 누군가는 패자가 되는 사회.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사회. '남보다 나은 삶', '평균의 삶'에 집착하고, '나와 다른 타인을 배척'하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유치원생부터 무한 경쟁 레이스에 올라 OECD 국가 자살률 1위와 합계 출산율 0.65명을 찍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장 나의 성공을 도와줄 것 같은 자기계발서가 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대부호 워런 버핏이 말하는 성공은 좀 다릅니다.



BZCF | 비즈까페 | 워런 버핏 삶의 지혜 (2024.04.22)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면 성공한 겁니다. 제 주변에 돈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데요. 그들 이름으로 학교에 강의실도 세우고, 그들 이름으로 성대한 파티도 하지만 다들 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더군요. 집에서도 사이가 좋지 않고요."



성공하고 돌아보니 나의 가족, 친구, 사회가 무너져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요?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돈보다 중요한 개인의 가능성과 꿈을 지지하고, 일과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며 내가 딛고 있는 곳의 평화를 수호하는 것. 이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살고 인류가 번영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요즘 저는 '나 자신의 고유성과 인생 질문을 발견해 나다운 삶을 살며, 모두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공개될 '골든서클 워크숍(Golden Circle Work Shop)' 공지로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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