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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Nov 22. 2020

삶을  가르쳐 준 인연들

이층 아저씨

어린 시절, 우리 집은 2층 단독주택었다.

큰 집에 비해 방이 많다며, 1층 문간방도 세를 주고 2층 전체도 세를 줬는데, 1층은 영동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부부가, 2층엔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부부가 사셨다.

내 나이가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때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2층에 사시는 아저씨가 30대 중반쯤이었던 걸로 여겨진다.


유치원엘 가려면 일곱 살은 돼야 했던 시절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 나이의 꼬마가 하루 종일 할 일은 많지가 않았다. 그저 노는 게 전부였는데, 내가 살던 동네엔 이상하게 또래 친구들이 없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랑 놀다가 너무너무 지겨워지면 2층으로 올라가고는 했는데, 나는 2층은 우리 집과 아무 상관없는 독립된 가구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철부지라 다 함께 그냥 가족이라고만 여겼다. 같은 지붕 아래 사니까 당연히 무조건 가족.

2층 문을 휙 열고 들어가서 크게 아저씨를 부르면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고, 그 당시 아줌마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조금 깍쟁이처럼 생긴 멋쟁이 아줌마는 내가 아저씨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기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랑 아줌마가 일을 하러 밖에 나가지도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이상했을 법도 한데, 그땐 너무 어려 맘껏 놀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마냥 신나기만 했다. 엄마는 2층 아저씨네 부부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번역일을 하신다고 했고, 번역이 뭔지 몰라도 외국 가서 공부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아저씨네 부부가 무조건 멋있게 보였다.

지금은 아쉽게도 사진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버렸지만, 집 정원에서 아저씨가 나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다 자라서도 사진 속 아저씨를 가만 쳐다보고 있자면 웃을 때의 눈매가 참 선하고 고왔다.


세 살 위였던 언니는 나보다는 생각이란 걸 더 하고 살았는지, 밖에서 신나게 놀다 들어온 어느 날, 엄마한테 불쑥 물었다.

"엄마, 2층 아저씨 목욕탕 앞에서 봤어. 근데 왜 남탕에서 안 나오고 여탕에서 나와?"

엄마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갑자기 들키면 살짝 당황하면서 억지로 웃는, 엄마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 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김없이 그런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때 언니는 알았단다, 아저씨가 실은 아저씨가 아님을.

엄마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말라며, 이 동네 사람들 아무도 모른다고, 아빠, 엄마만 알고 있으니 절대 입 꼭 다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는 아저씨가 여탕에서 나왔거나 말거나 매일 2층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고, 아이가 없었던 아저씨네 부부는 나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다.

우린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니까 영원히 이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 몇 년이 지나고 엄마가 갑자기 말씀하셨다.

아저씨네 일본으로 간다고.


이상하게도..  아저씨가 일본으로 이사 가는 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가 일부러 나를 어디로 빼돌렸을까? 아저씨와 놀았던 기억은 생생한데 헤어진 기억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내 뇌가 일부러 그 기억만 삭제했을까? 아플까 봐? 그리울까 봐?


아저씨랑 같이 동네 산책을 나가면... 이런저런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는데,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지적 장애를 가진 이웃들을 만나면 한참을 눈을 떼질 못했다. 그리고는 나랑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 눈을 가만 쳐다보고 말씀하셨다.

"절대 겉모습으로 사람 놀리고 흉보면 안 되는 거야. 저렇게 아파도 마음속은 누구보다 깨끗해. 아저씨 말 알았지?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이해하는 맘으로 마주 봐야 해, 그렇게 자라야 해. 아저씨 말 알았지?"

마치 내 눈동자에 그 당부를 문신하듯 단단히 새겨 넣겠다는 듯이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수 십 년 전, 지금보다 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의 이 나라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아저씨가 살아계신다면 일흔도 훌쩍 넘긴 노인이시겠지. 흰머리가 설탕처럼 내려앉은 아저씨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많이 그립다.

고운 눈매가 보고 싶다.

아저씨도 아직까지 날 기억할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주장이 언제부턴가 심심찮게 나온다.

예전엔 당연히 틀린 거고, 이상한 거고, 나쁜 거고, 더럽다고 치부되어왔던 이념들이 여기저기서 더 이상은 감추고 살 순 없다고,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달라고,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이냐고 아우성치며 튀어나오고부터.

지금도 세상은 충돌하는 수많은 가치관들로 상처 주고받기를 끝없이 하고 있다.

 

아저씨.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아저씨 당부처럼 살려고 애썼어요. 앞으로도 누굴 만나든 사람을 만날 때 겉 말고 속의 진짜 고운 결을 늘 살펴보며 살게요.

그때, 모든 게 다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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