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힘을 얻다
평소 앓고 있던 월요병이 극에 달했던 어느 날, 나는 계획 없는 월차를 냈다. 놀 계획은 꽤 신중히 고민하는 편인데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계획이었다. 하지만 월차를 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급작스러운 일탈을 감행했다.
무계획이었던 것과는 달리 여행 일정은 꽤 순조롭게 짜였다. 얼마 전 올해 2월에 개통한 포천화도 고속도로에 대해 들었던 참이었다. 그곳에 위치한 수동휴게소에 있는 로봇이 식사를 만들어 준다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목적지는 그 길 끝에 있는 포천. 여행지는 그렇게 얼렁뚱땅 정해졌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기에 많은 짐은 필요치 않았다. 멀지 않은 곳이니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던 여행 당일. 어쩐지 계획 잡을 때 순조롭더라니. 갑작스러운 일로 스케줄이 꼬였다. 그 덕분에 가장 먼저 방문하리라 점찍어둔 수동휴게소 일정이 제일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닌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기에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회사를 떠난 나는 이렇게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였다(단순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창문을 살짝 내리고 달리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길도 안 막히고, 미세먼지가 조금 있었으나 바람만큼은 시원했다. 벚꽃 시즌이 끝물에 다다르니 도로 양 옆의 초목들이 울창해진 것이 보였다. 딱 내가 좋아하는 시즌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 포천에 왔으니 이동 갈비를 먹어야 하지 않겠나. 원산지에서 갈비는 꼭 먹어보고 싶었기에 전날 1인 고기 주문이 가능한 곳을 미리 알아보았다. 흔쾌히 방문하시라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방문한 갈빗집. 포천 이동 갈비촌의 한가운데 위치한 그곳은 멋들어진 한옥으로 지어져 있었다. 멋과 맛, 두 가지를 모두 잡겠다는 다부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은 멋과 맛, 두 가지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몹시 흡족한 점심을 마친 뒤, 바로 산정호수로 향했다. DJ의 흥이 넘쳐흐르는 산정랜드를 지나 드넓게 펼쳐진 푸른 호수. 그 호수를 따라 길게 늘어진 나무 데크 길. 녹음이 짙푸르게 올라오던 시기인지라 자연스럽게 그늘 가림막이 생겨 산책길로는 완벽했다. 천천히 걸으면 대략 1시간 좀 넘게 소요된다. 시간만 따지면 제법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조용히 들리는 물소리와 눈앞에 보이는 산봉우리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데크길의 끝에 다르게 된다.
시원한 호수바람을 잔뜩 만끽한 뒤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비둘기낭 폭포. 한탄강 하늘다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곳은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그 덕분인지 사람 없는 비둘기낭 폭포를 독점할 수 있었다. 조금 가파른 나무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눈이 시원해지는 협곡과 희게 부서지는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입과 눈이 절로 벌어지는 광경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바빠진다. 사람은 나 밖에 없었던 덕분에 다양한 각도로 사진 찍는 것에 성공했다.
사실 이 폭포는 다양한 영상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협곡.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흘러 흘러 협곡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인데, 그 광경이 몹시도 웅장했다. 너무나도 그림 같은 광경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시원하게 들리는 바람과 물소리는 귀와 머리에 끼인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그 광경을 전세내고 있는 것이 조금 면구스러울 정도였다.
캠핑을 즐기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자연에서 얻는 힘이 생각지도 못하게 대단했다. 무계획으로 급작스럽게 시작된 여행인데 이런 에너지를 얻게 될 줄이야. 다소 충동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많은 것을 얻었던 포천 여행. 다소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부여했다. 예상 못한 수확이었다. 여행의 순기능. 딱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