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82일, 여든두 번째 썰
오늘 아침은 유독 분주했다.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닌데 준비 과정 하나하나가 오래 걸렸다. 빨리 준비한다고 서둘렀는데 집 밖으로 나섰을 땐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출근길에 하나만 삐끗해도 바로 지각행인지라 정신없이 동네를 빠져나왔다. 너무 정신없었던 나머지, 가장 중요한 물건을 놓고 나온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의 작은 구원자, 손풍기를 말이다.
6월부터 9월까지의 난 걸어 다니는 땀 주머니이다. 더위에 무척 취약하고 땀도 많아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에 샤워 후 에어컨이 없으면 움직이는 동안 다시 땀이 난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구간은 바로 지하철 역사까지 가는 지하도 구간이다. 특히 내가 출근길에 이용하는 역의 경우, 지하철역 입구에서 역사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다.
출근길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한 곳에 환풍기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곳을 걸어가는 동안 땀이 넘쳐흐른다. 역사에 도착 후 지하철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손풍기로 땀과 열을 식혀야 한다. 지하철 안에 사람도 많은데 땀을 줄줄 흘리며 서 있는 민폐 덩어리가 될 수는 없으니까. 물론 손바닥만 한 손풍기로는 어림도 없지만 나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 아이템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친구를 내가 집에 버려두고 온 것이다.
처음에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허전하기는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지하철역을 내려가는 도중에 내가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아차렸다. 때는 늦었다. 일단 가야 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을 밟았다. 만약 지하철역 안에 손풍기를 팔았다면 나는 얼마가 들던 구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지하도를 걸어가는데 볼 쪽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필 손수건도 없어서 대충 손바닥으로 찍어내며 땀을 훔쳐냈다. 이건 사고다.
드디어 도착한 지하철 역사. 내가 타는 칸에 서자마자 미친 듯이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에 입은 나시티의 등 부분이 흠뻑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모공이 활짝 열린 두피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나와 이마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찰나지만, 정말 순간적으로 지하철을 꼭 타야 하는가 고민했다. 시각적인 요소도 끔찍했지만, 후각적인 요소가 크리티컬 히트였다. 평소 나의 땀 냄새는 크게 모르겠다던 엄마의 말을 이 순간만큼은 믿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각만큼은 정말 할 수 없었다. 타야 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닦아내며 힘겹게 지하철에 올라탔다. 죄송합니다를 속으로 수천 번 읊조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하철에서 에어컨이 열심히 가동 중이었다. 하지만 나의 땀을 내가 원하는 속도로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이 정도의 땀이라면 차라리 샤워를 다시 하는 편이 더 빠를 터였다. 내릴 역까지 가는 동안 폭포수 아래 들어간 무림고수처럼 도 닦는 기분으로 버텨냈다. 힘겹게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 사무실로 가는 동안 다시 열린 모공들과 다시 폭발한 땀샘들. 기적 같은 속도로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도착인증처럼 인사를 남기고 수습을 위해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침부터 진을 쏙 뺐더니 오전 내내 멍해서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작디작은 손풍기 하나 놓고 왔을 뿐인데, 뭔가 중요한 순서가 바뀐 기분까지 들었다. 슬픈 것은 아직 내가 힘든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는 오늘로 끝이라는 것. 습도만 없다면 그나마 살만 해진다. 그래, 긍정적인 마인드로 가는 거다. 내가 힘든 계절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손풍기와 함께라면 버틸 수 있다. 버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