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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Aug 26. 2023

제 사생활은 공공재가 아닙니다만

[100일 100 글]78일, 일흔여덟 번째 썰 

나는 예전부터 내 사생활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는 편이 아니었다. 딱히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고 뭔가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기는 것이 매우 귀찮아서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애매하게 30%만 넘기는 정도로 이야기를 한다. 정말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리 편치 않았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입을 닫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 간혹 꽤 비밀스러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넌 참 너에 대해서 말을 안 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충 멍청하게 웃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애용하는 방법이다. 그럴 때마다 어떤 확신이 든다. 아, 나에 대해서 그다지 궁금한 건 아니었구나. 


남의 사생활도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냥 먼저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말지 내가 먼저 선수 치듯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외로 입도 무거운 편이라 다른 곳에 가서 들은 것을 언급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지라도 당사자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척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이 일반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런 편이어서 나에게는 이게 보통이었다. 순진하게도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입사 후 몇 년 동안 꽤 친하게 지낸 동기가 있다. 안 그래도 우울한 회사 생활에 그래도 외부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꽤 자주 자리를 만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되어 느끼는 힘든 점이나, 상사들을 대할 때의 팁과 같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아마 그 과정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넘어간 것 같다. 스스로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 말이다. 아차 싶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괜찮겠지 했던 것 같다. 나름 친한 사람이었으니까. 역시 술이 원수다.  그렇게 인생이 내 뜻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부서별로 회식 자리가 만들어졌다. 모두가 예상했듯이, 술이 얼큰하게 올라온 그녀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나와 단 둘이 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본인 것이 아닌, 내 것을 말이다. 무슨 소원 연못에 던지는 100원짜리 동전처럼 툭 던져 버렸다. 너무 쉽고, 가벼웠다. 


그때 느꼈던 당혹감을 생각하면 아직도 뒷목이 욱신거린다. 이야기의 무게나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둘이 있을 때 했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것 자체가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회식 자리,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말이다. 그때 당시 어떻게 무마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솔직한 말로 궁금하지 않다. 어쨌든 내 이야기를 내 동의 없이 털어놓은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그녀에게는 웬만하면 개인적인 얘기를 안 하게 되었다. 그냥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내가 뱉은 말이 어디 어느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려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내 이야기가 언급되어 시선이 몰렸을 땐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싸구려 가십거리가 아니다. 술자리에서 쉽게 언급할 만큼 가볍지도 않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전부 그렇다. 제발, 이것만큼은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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