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87일, 여든일곱 번째 썰
언젠가의 주말. 그날은 나 혼자 집을 지키던 날이었다. 바람을 쐬러 잠깐 나갔다 온 후,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거의 신생아처럼 누워 있다가 생리 현상을 처리할 때와 굶주린 배를 채울 때만 꿈틀대며 움직였다. 식사를 할 때도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찬 하나로 대충 때웠다. 누군가 보면 혀를 찰지언정, 나에게는 이것이 기본값이기에 익숙했다.
또 그렇게 누워있다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눈치 없는 내 위는 밥을 달라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침대 위에 완벽한 자세로 누워있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버틸 만큼 버티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을 때쯤 일어났는데 음. 집에 먹을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배달을 시킬까 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메뉴가 없었다. 하필 라면도 없어서 결국 나는 동네 마트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다.
라면을 사려고 도착한 마트. 라면을 달랑달랑 들고 구경을 하던 중 나의 발걸음은 육류 냉장고 앞에 멈춰 섰다. 삼겹살을 사던 평소와는 달리 그날은 이상하게 마블링 낭낭한 한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나이기에 좀 이상하다 싶었다. 더 이상한 것은 계산을 마치고 마트 밖으로 나온 나의 손에는 때깔 좋은 한우와 함께 구워 먹을 버섯이 들려있었다는 것이다. 라면은 온데 간대 없이 사라져 있었다.
고기는 본디 각을 잡고 먹어야 하는 법. 무조건 kg 단위로 구매를 해서 다 같이 와앙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혼자 먹기 위해 고기를 사다니. 그것도 한우를. 스스로가 생각해도 의아했다. 혼자 있을 때 번거롭고 귀찮은 것은 지양하는 나였다. 더욱이 한 팩에 3만 원이 넘는 한우를 사다니. 일단 샀으니 집에 가서 고민하자 싶었다.
집에 돌아와 커다란 프라이팬을 꺼낸 뒤 인덕션의 열을 최대로 올렸다. 그리고 고기와 버섯을 한방에 때려 넣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열정적으로 고기와 버섯을 뒤집었다. 프라이팬을 통째로 식탁에 올릴까 하다가 그래도 제대로 먹자 싶어 예쁜 빨간색 접시를 꺼냈다. 플레이팅에는 재능이 없기에 그릇 위에 툭툭 올려놨다. 조금 투박해 보였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차가운 맥주와 함께 먹는 3 만원 한우라니. 개중에 잘 골랐는지 육즙 가득한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야들야들한 버섯의 식감도 최고였다. 조금 느끼하다 싶을 때는 맥주로 쭉 내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제대로 차려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호사가 있나. 라면을 생각했던 몇 시간 전이 아득해졌다.
3 만원이 넘는 한우를 구매한 이상한 날. 아마도 그날 먹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뇌가 몸을 움직여 고기를 집어든 것이 아닐까 싶다. 제발 부탁이니 네 몸을 생각해서 잘 좀 챙겨 먹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라면을 사러 간 마트에 홀리듯이 고기를 구매한 아닐까. 물론 뇌가 지갑 사정을 생각해 한우 대신 다른 고기를 골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