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대학교 나왔나 서러워
작년 7월부터 시작해서 올해 6월,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딱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와 희망을 가득 안고 있었던 신문방송학과 4학년 25살 대학생은 결국 돌고 돌아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홀든 콜필드가 마주하고 있던 거울 속의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날 움직이는 많은 원동력을 잃었다. 자의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나는 결국 공무원이라는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상을 꿈꾸던 소년이었던 나는 이제 무력감과 피로감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어른이 되었다.
#1 교직원
26살의 나는 몇 번의 인턴생활을 거쳐 나는 대학교의 교직원이 되었다. 애초에 내게 창조성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기대를 안고 입사한 곳이었다. 분명 내가 속한 이곳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업무는 내년 예산 삭감 방지를 위해 서류를 날조하는 일. 충격적이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월급을 타는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기도 했고, 연말연초에 이런 업무는 공공연하게 있다고 얘기하는 대리는 더욱더 한심하고 미웠다.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나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극심한 두근거림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결국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학교를 나왔다.
#2 사회적 기업
‘도시재생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회사에 입사한 나의 n번째 직장생활은 혼란 그 자체였다. 면접 때 봤던 인자한 대표는 온데간데없고 내 옆에는 만취한 상태로 출근해 폭언을 내뿜는 술주정뱅이뿐이었다. 업무 환경도 면접 때 얘기한 것과는 매우 달랐다. 학과 내에서도 사회과학을 전공한 나는 학술지, 논문에 필요한 자료들을 만드는 역할로서 입사했으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온갖 잡일과 연관성 없는 업무에 동원되며 내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더욱 최악이었던 건 입사하자마자 줄줄이 시작되는 동료들의 퇴사 러시.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똑똑하고 능력 있는 동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대표의 폭언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 내가 되겠다는 것을 직감했고, 나 역시 퇴사 러시에 동참했다. 2021년의 여름이었다.
#3 공무원
이쯤 되면 뭐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어디든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맹목적에 사로잡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4학년인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자던 포부는 사라졌다. 일에서 나의 인생 목표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은 공무원이었고,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공부했다.
결국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으며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다만, 나는 곧 내게 닥칠 발령 통보가 사형 판결같이 느껴질 것만 같다. 거울 밖 홀든이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