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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 A May 16. 2021

INFJ가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EP2

내가 INFJ라는 사실조차 싫은 INFJ들

 커버 이미지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참새'님의 작품임을 밝힙니다. 


 MBTI라는 몇 가지의 유형만으로 사람을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INFJ라는 유형의 특성을 알게 되고 내 마음에 빗대어 볼수록 이 MBTI라는 성격진단은 사람을 꽤나 혹하게 만든다. 특히나 불특정한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 던진 아주 사소한 돌멩이는 한시도 내 마음을 고요하게 두질 않는다. 4,100원이나 하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는 고민은 아주 긴 긴 꼬리가 되어 주택청약까지 이어진다. 이러니 사람이 예민해지지 않고 배길 수가 있나.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돌덩이가 쌓이다 보면, 결국 내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진다. 사랑도, 연애도, 일상도. 어느 것 하나도 나와 같은 극단적 INFJ들에겐 쉽지 않다. 




1. 점심은 혼자 먹고 싶은데요.

 나는 회사에서 학술지 또는 논문을 쓰는 일을 한다. 그렇다 보니 다른 직원들이라 일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드문 편이고, 나의 업무는 자료 서칭과 분석, 그리고 타자 치기에 한정되어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극도로 밋밋하고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는 이 일이 난 꽤나 마음에 든다. 우선 누군가와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최고다 최고. 


 하지만 가장 최악의 순간은 바로 점심시간에 찾아온다. 회사의 규모가 작다 보니, 직원들이 다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가 많은데, '혼자 먹고 오겠습니다!!'라는 말이 입 안에서 도저히 나오질 않는다. 그리 친하지도 않고, 굳이 살가울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는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꾸역꾸역 밥을 먹다 보면 명치가 먹먹해오기 시작한다. 시리얼을 마시듯이 밥을 훌훌 마시고 누구보다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며 자리를 뜬다.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와 이어폰을 꽂고 혼자 산책을 하다 보면 명치에서 앵앵거리던 밥알과 반찬들이 소화되기 시작한다.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다 보면 눈은 밥그릇에 고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는 테이크 아웃해서 나온 치즈버거, 치킨 스낵랩, 빅맥 라지 세트를 내 방에서 조용히 먹는 것이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삼시 세 끼를 평생 맥도날드로 해결할 자신이 있고, 노이즈 캔슬링을 켜 망망대해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다. 가족, 애인,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친구들 외의 사람들과 밥을 먹는 일은 INFJ들에겐 고문이다. 




2. 대체 왜 나한테 잘해주지?

 나는 나 외에 INFJ를 본 적이 없다. 워낙 희귀한 유형이기도 하지만, 알고 있는 지내는 사람도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반화하기는 더욱 어렵지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손에 꼽다는 점 역시 INFJ가 가진 폐쇄성과 의심에서 기인한다. 여태껏 내게 잘해줬던 가여운 사람들은 나의 의심으로 인해 하나 둘 떠나가곤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난 누군가 내게 대가 없는 선의를 보여주면 '왜 내게 잘해주려는 거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라는 멍청을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굉장히 한심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고쳐지지가 않는다. 

 

 결국 내게 호감을 보였던 많은 이들에게 나는 상처를 주었고, 그들이 줬던 사랑을 쌀쌀맞게 거절했다. 결국 내가 먼저 사랑을 줬던 이들 외에 내 주위에 남은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나 이질적 이게도, 난 동화 같은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그런 동화 말이다. 스물도 훌쩍 넘겨서야 그런 공주님이 나타났기에 겨우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답답하고 모난 나의 마음을 먼저 두드려줬던 이들의 마음을 거짓말로 일축해버린 나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제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보다 훨씬 잘나고 그들을 사랑해줄 수 있는 이들을 만나도록 축복하는 것뿐이다. 


INFJ는 말투만 서툰 게 아니라, 타인의 솔직함에도 서툴다. 




3.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답이 없는 궁금증의 답을 원해요.


 난 실제로도 모나고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이것들이 걱정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면 일상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업무 수행력이 부족하면 공부를 더 하고, 몸이 약하면 운동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궁금증에 물음표를 달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난 내가 좋아하는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내가 행복하자고 남들에게 베푸는 것은 다 내 욕심 때문이 아닐까? 나 행복하자고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데, 결국 내 이기심에서 시작한 거니까 비도덕적인 행위인 게 아닐까?' 


 나는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공자나 소크라테스처럼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다. 굳이 접점을 찾자면 고등학생 때 철학과 윤리를 좋아했다는 점뿐인데, 그 정도에 얄팍한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선 이러한 난이도의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는 없다.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졸리면 잠을 자면 되고, 돈이 없으면 일을 하면 될 뿐인데 대체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의 굴레를 떠날 수 없으니, 나도 참 지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고민하고 살 바엔 죽는 게 나은 것 같은데 이것도 자살충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밤 역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나의 걱정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작은 걱정들을 먹고 자란 무섭고 덩치가 큰 걱정이 무례하게 내 마음을 두드린다. 사소한 다툼 하나 없이 애인과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애인이 냉정하게 내 곁을 떠나는 끔찍한 꿈을 꾸고, 내일 점심시간엔 직장 동료와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몰라 끙끙댄다.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INFJ의 극단적인 예시일 뿐이고, 세상 사람들 중 나 같은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소하지만 거창한 꿈을 꾸며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엔 행복과 사랑만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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