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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 A Apr 17. 2021

INFJ가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EP1

내가 INFJ라는 사실조차 싫은 INFJ들

나는 INFJ, 인프제, 선의의 옹호자, 예언자형이며 세계에 1.5%밖에 없는 희귀종이다. 다들 유형과 마찬가지로 꽤나 거창한 설명이 붙지만 유형 특징을 오목조목 뜯어보았을 때 내가 내린 INFJ에 대한 결론은 ‘거 참 인생 힘들게 사는 사람이네’였다. 특히나 ‘우리가 남이가’ 문화가 끝도 없이 고여버린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기를 펴기 어려운 유형이다.


얇고 길게 살자 늘 다짐하는 나지만, 오만가지 걱정을 달고 사는 INFJ는 단명할 운명을 타고났다.


1. 인내심이 많고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남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평가를 내린 이에게 묻고 싶다.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꼴을 보고 사는지 아세요? 직장 혹은 대학교 등, 사회생활 중 INFJ들은 뭐 하나 말 꺼내기 쉽지 않다. 프로젝트나 조별과제가 산으로 흘러간다 싶으면 ‘이건 아닌데’란 생각에 뇌가 잠식당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이 말을 꺼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심’이라는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섣부르게 얘기하지 말고 신중하자’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이성적으로 말을 꺼내야 할 순간들은 지나가고 만다. 골든타임을 놓친 INFJ들의 능력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직 이성을 붙들고 있지만 화합을 위해선 누군가 멱살 잡고 캐리를 해야 한다는 직감은 뇌리를 스치고, INFJ는 마음을 먹는다.


      ‘내가 조장할게  X 놈들아


물론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이때부터 INFJ는 ‘내가 해내야 한다’는 맥락 없는 책임감에 휩싸이게 되며 내 육체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을 채 일을 끌고 간다. 다행인 것은 일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현타보다 안도감을 더 느낀다는 점? 남들에게 주목받는 건 또 극도로 싫어서 회식이나 술자리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큰일이 지나간 후에, INFJ는 동면에 들어가야 한다. 이뤄낸 성과에 비해 티 내는 걸 부끄러워 하기에 칭찬엔 손사래를 친다.


노예라는 점에서 ISFJ와 비슷하지만, INFJ는 본인이 노예인 걸 알면서도 고급 노예가 되는 것을 자처한다.


2. 확고한 신념과 열정으로 자신의 영감을 구현시켜 나가는 정신적 지도자.


INFJ로써 내가 내린 결론은, ‘차분한데 은근 똥고집이 센 사람’이다. 남들이 괜찮은 충고나 조언을 해주면 우선 ‘좋은 얘기 너무 고마워 헤헤 ^^....’ 하며 상황을 회피한다. 하지만 대부분 다 흘려듣고 마이웨이를 가게 되는데, 말이 좋아 정신적 지도자지 일반적인 레벨의 INFJ들은 사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근거가 없는 건 아닌데 어딘가 두루뭉술한 자신감들이 튀어나온다.

루터 킹 행님처럼 타고난 리더십도 있었다면, 난 대형 감자 정도는 됐을 것이다.


또한 나 혼자에게만 적용되는 사례일 수도 있는데 ‘선한 영향력’을 참 좋아한다. 뭔가 구체적인 플랜이나 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들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따라서 생면부지라도 뭔가 감성적으로 내 마음을 두드린다면 그때부터는 온갖 오지랖을 다 떨고 싶어 진다. 하지만 오지랖을 떨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기에 소심한 오지랖을 떤다. 분명 나의 행동 패턴이 맞긴 한데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제발 하나만 확실히 하라고....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INFJ들은 생각 많은 감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3. 다툼과 분쟁을 싫어하는 비둘기

 

내 돈이랑... 마음이랑... 또 뭐 있지... 암튼 다 가져가라....

고래 사이의 새우가 될 확률이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높다. 경험담으로써, 특성 그룹 내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INFJ들은 백이면 백 친구가 적다. 내가 세상 모든 INFJ를 만나본 것은 아니나 확신할 수 있다. 아무튼 INFJ들에게 남은 친구들은 ‘평생 보고 싶은 사람’으로 선정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기에 이들의 사이를 원만하게 돌려놓고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말도 잘 못하면서 꾸역꾸역 아무 말을 꺼내놓고, 술자리를 먼저 잡는 등 눈물겨운 똥꼬쇼가 시작된다. 쪽팔려서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또 내가 힘든 건 남들이 잘 모른다. 어쩌면 주변 지인들의 행복을 보는 게 INFJ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라 이렇게 많은 걸 참아내며 다들 행복하길 바라는 걸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누구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데, 정말 드물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지만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건 참 힘들다.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도 어렵고, 행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더라도 내가 뭘 실수해서 이 사람에게 실망감만 안겨주진 않을지, 매사가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이러니 자연스러운 대화는커녕 분위기를 다 얼려버려서 황급히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INFJ들이 본인의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쌀쌀맞아 보여도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따듯한 사람들이라 자신할 수 있는데 말이다.


NFJ라는 검색어로 구글링을 하다가 재미있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INFJ는 본인이 INFJ에 속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번이고 다시 검사를 해본다는 글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는 사실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고 무난한 사람이고 싶지 전 세계 1.5%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검사를 해봐도 나는 INFJ인데.


물론 INFJ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분명 INFJ가 가진 아름다운 면도 존재한다. 특히 남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아한다는 점은 INFJ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빡세게 돌아가는 국가에서 사기당하기도 좋고, 갑작스러운 폭발적인 감정에 휘말려 내 몸이고 마음이고 다 떼줄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토끼고 고라니고 최약체들도 다 살아남으니까. 초식동물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오늘, 내일을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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